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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정국 커버 화보 촬영 비하인드

샤넬 뷰티 글로벌 앰배서더로 첫 발을 내디딘 정국이 엘르 1월호 커버를 촬영한 그날.

프로필 by 정윤지 2025.12.28

“리츠는, 나의 집입니다(Le Ritz, c’est ma maison).” 가브리엘 샤넬이 고요하고 사적인 시간을 보낸 곳. 프랑스 파리의 리츠 호텔 스위트룸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천장 모서리를 타고 흐르는 조명, 반쯤 열린 커튼 사이로 말갛게 스며드는 빛, 샹들리에의 미세한 흔들림마저 영화처럼 느리게 반짝였다. 그리고 곧, 그 방에 정국이 들어섰다. 그날만큼은 조금 더 느리고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시차를 견디고 서울에서 파리로 막 도착한 그는 무대든, 화보든 뭐든 시작되면 그 세계에 온전히 동화돼 버리는 사람이다. 그리고 기어코 그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아티스트.


정국은 평소보다 더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로 가브리엘 샤넬이 머물던 공간을 천천히, 하나하나 좇았다. 그건 어쩌면 시간 여행에 가까웠다. 그의 시선이 닿은 테이블에는 샤넬 글로벌 패트리모니 팀이 공수한 1920~1950년대 샤넬 향수의 원형들이 놓여 있었다. 유리병에 갇힌 반세기 전의 기억들이 표면 가까운 곳까지 떠올라 일렁였다. 글로벌 담당자는 애정 어린 눈으로 병들을 차례로 쓰다듬으며 설명했다. 가브리엘 샤넬이 향을 결정하던 방식, 그녀의 직감, 시대의 공기 그리고 샤넬이 지금까지 그 향을 세상과 어떻게 호흡하게 해왔는지를….



정국은 향의 기원을 들으며 고개를 기울였고, 조심스럽게 병의 라벨을 읽으며 그 흔적을 탐색했다. 그의 눈빛은 ‘호기심’과 ‘존중’ 그 어디쯤에 있었다. “이 향, 알아요. 좋아해요.” 짧은 문장이었지만, 듣는 순간 모두 활짝 웃었다. 앰배서더로 선정되기 전부터 이미 샤넬의 향들을 꾸준히 또 찬찬히 알아왔기에 그는 힌트 없이도 대부분 향의 이름을 알아맞히거나, 특정 향에 대한 감흥을 털어놓았다. 특히 블루 드 샤넬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 순간, 이 자리의 목적은 더욱 분명해졌다. 그저 단순한 화보 작업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감각들의 만남이 될 것 같았다.


정국은 대담한 아티스트다. 방탄소년단으로 써내려 간 행보는 말할 것도 없이, 아시아 가수 최초로 타국의 월드컵 개막식 오프닝 공연에 서거나, 첫 솔로 싱글 ‘Seven (feat. Latto)’으로 빌보드 HOT 100 1위이자 ‘핫 샷’을 기록했다. 최근 스포티파이에서 한국 솔로 아티스트 첫 누적 100억 스트리밍을 돌파한 기록 또한 이를 방증한다. 끈기와 열정, 재능과 성실함을 한 몸에 품고 유유히 나아가는 발걸음은 샤넬의 궤적과 닮았다. 그의 음악과 퍼포먼스는 늘 정교하게 조율되고, 불필요한 장식은 배제되며, 결과는 기록으로 이어진다.


가브리엘 샤넬이 1921년 N°5를 만들며 선택한 방식 또한 ‘우아함을 과장하지 않는 우아함’이었다. 시대가 요구하는 화려한 향이 아니라 구조가 분명하고, 감각의 층위가 정확하게 쌓인 ‘공기’. 정국이 음악에서 선택해 온 방향성과도 일치한다. 무조건 강하고 트렌디한 비트보다 뉘앙스를, 과시적 퍼포먼스보다 적재적소의 여백을 드러내며. 블루 드 샤넬처럼 감각적이지만 정교하고, 단순하지만 쉽게 흉내 낼 수 없다. 그의 보컬과 퍼포먼스는 감정을 드러내되 넘치지 않으며, 무대에서의 움직임이 화려하되 정밀한 이유다.


하얗고 긴 소매의 니트를 입은 정국이 카메라 앞으로 들어섰다. 이 순간만큼은 뉴욕부터 서울까지 수많은 관중을 운집시키는 ‘팝 스타’보다 파리의 한 젊은 무용수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평소보다 더 곱슬곱슬한 머리를 했지만, 이날 따라 더 짙고 성숙한 느낌을 풍겼다. 그리고 첫 셔터를 누른 순간, 정국은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던 사람처럼 앵글에 들어왔다. 과장된 동작 없이 장면의 중심을 정확히 잡았다.


재스민과 오렌지 블러썸 향을 더해 풍부한 플로럴 향의 궤적을 남기는 레 젝스클루시프 드 샤넬 가드니아, 75ml 38만원, Chanel.

재스민과 오렌지 블러썸 향을 더해 풍부한 플로럴 향의 궤적을 남기는 레 젝스클루시프 드 샤넬 가드니아, 75ml 38만원, Chanel.


가브리엘 샤넬이 N°5와 N°19, 코코 마드모아젤을 창조한 이후 100여 년이 지난 지금, 같은 공간과 같은 자리에서 정국은 그 모티프가 된 창문 너머의 방돔광장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리고 관광객과 꽤 가까이 닿아 있는 방돔광장 쪽을 향한 창을 열고 촬영을 진행해야 했을 때, 아무래도 안전과 보안을 이유로 <엘르> 팀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는데 정국은 “저는 괜찮아요”라고 짧게 웃으며 말했다. 결국 문을 열고, 광장은 기다렸다는 듯 예쁜 하늘을 보여주었다. 그 화보 컷은 <엘르> 건물 옥외를 뒤덮는 베스트 컷이 됐다!


촬영 중간중간에도 작은 웃음소리들이 들려왔다. 오늘 개인으로는 첫 작업인 포토그래퍼와 정국이 의견을 주고받다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린 것. 그 순간이 111페이지에 고스란히 실렸다. 그 웃음처럼, 정국은 자신을 과장하지 않는다. 카메라 앞에서 욕심내지 않고, 감정을 억지로 포장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만 하고, 할 수 있는 만큼만 보여준다. 그러나 그 진솔함이 늘 정확한 순간을 만들고, 진심을 만들고, 이날의 사진 역시 그런 흔적들의 연속이었다.


이어 정국은 코코 샤넬 스위트의 벽난로에 가만히 기댔다. 미드 템포의 그루비한 음악 사이로 그는 빠른 컷과 느린 컷의 간격을 조절하며 자신만의 템포를 유지했다. 평소 무대 위나 여타 화보에서 보여줬던 강하고 역동적인 에너지보다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정국은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기보단 공간을 바라보고, 빛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가만히 귀 기울였다.


가끔 눈인사나 대화로 긴장을 풀기도 했다. 샤넬 뷰티 관계자들과 영어로 안부를 건네고, 때때로 무드에 따라 실키한 셔츠의 커프스를 스스로 풀거나 여미고, 롱 코트를 벗거나 다시 입기도 했는데 이 모든 건 그가 왜 지금 이 방에 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보컬리스트’ ‘퍼포머’ ‘글로벌 팝 아이콘’ ‘방탄소년단의 막내?’…. 지금은 파리의 향기를 그대로 흡수한, 그저 스물여덟 살의 정국이 그 자리에 있었다. 샤넬 뷰티 글로벌 앰배서더로서의 첫 페이지. 그 마지막 셔터가 닫히고 정국이 남긴 것은 단지 사진 몇 장이 아니었다.



그는 이날 샤넬 향수의 시간과 자신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겹쳐 놓았다. 정국은 가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아티스트다. 어떨 땐 영원히 자신의 노래인 ‘Euphoria’에 사는 소년 같다가도, 가끔 ‘시차’의 가사처럼 ‘누구보다도 빨리 어른이 된’ 사람처럼 보인다. 늘 전 세계를 비행 중인 것 같으면서도 ‘칸쵸깡’을 하며 항상 집에 머무는 사람 같기도 하다. 누군가의 꿈이기도, 오랜 친구이기도 한 정국은 지금 어느 곳, 어느 시간대를 여행 중일까. 어떤 사람은 노력으로 성장하고, 어떤 사람은 타고난 재능으로 사랑받지만 정국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유유히 나아간다. 그의 매력은 화려한 기록이나 타이틀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마 그를 사랑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리고 다음 장부터, “나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시간에 영원히 살고 싶다”는 정국과의 다정한 대화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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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뷰티 에디터 정윤지
  • 피처 에디터 전혜진
  • 사진가 윤지용
  • 패션 스타일리스트 김영진
  • 헤어 스타일리스트 김화연
  •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다름
  • 아트 디자이너 이소정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