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음악평론가 김영대의 마지막 기록은 사랑 이야기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노래, 발라드로 기록한 김영대 평론가의 서정.

프로필 by 김영재 2026.01.19

김영대 워싱턴대학교에서 음악학을 전공한 음악평론가이자 음악인류학자. 개인 유튜브채널 ‘김영대의 스쿨 오브 뮤직’을 비롯해 수많은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K팝에 대한 대중적 담론을 깊이 넓혔다. 한국 힙합에 대한 공저부터 <BTS: THE REVIEW>, <지금 여기의 아이돌-아티스트> 등의 저서와 번역서를 발간했다. 2025년 11월 펴낸 <더 송라이터스>는 가장 보편적인 감정인 사랑과 이별에 대해 노래하는 한국 발라드 117곡을 엮은 음악 에세이이자 훌륭한 아카이브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 이 책을 마지막으로 2025년 12월 24일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인터뷰는 그해 12월 18일 진행됐다.


발라드, 이야기의 힘으로 전개되는 음악

2025년 11월 세상에 나온 <더 송 라이터스>는 그동안 펴낸 책 중 평론가 김영대라는 개인이 가장 잘 드러난 책 아닐까 싶습니다. 라디오를 통해서 음악과 사랑에 처음으로 빠졌던 순간에 대한 고백도 있죠. 개인적인 취향과 객관성 사이의 균형을 생각하며 최종적으로 책에 수록 된 117곡의 발라드를 고르는 과정이 녹록치 않았을 것 같은데

발라드를 정리하는 책은 언젠가 한 번은 써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평론가로서의 사명감이라기 보다는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으로서의 욕심에 가까웠죠. 제 작업 대부분이 다 그런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긴 해요. 사람들이 얘기하지 않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 90년대를 빛낸 명반 50>(2006), <한국 힙합:열정의 발자취>(2008), <힙합, 우리 시대의 클래식>(2010)도 그렇게 썼고 <BTS:The Review> (2019)책도 마찬가지죠. 발라드는 대중적으로 인기 있었던 통속적인 음악이지 평론가들이 막 관심을 갖고 글을 쓰는 주제는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음악적 가치가 낮은가,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우리 누구나 갖고 있는 발라드에 대한 추억을 정리하다 보면, 대중 음악을 자연스럽게 정리하는 효과도 생기지 않을까 싶었죠. 또 한 가지 이유는 ‘사랑’이라는 테마에 대한 책을 한번 써보고 싶기도 했어요.


평론서나 기록이 아닌 사랑에 대한 에세이가 될 수도 있었던 거군요

음악 얘기도 당연히 하지만 음악을 통해 결과적으로 사랑에 대한 담론을 얘기하고 싶었죠. 평론보다는 음악을 통해 바라본 사랑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평론가로서 정체성이 너무 자연스럽게 발현했죠(웃음). 나의 청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모든 사람들의 청춘과 사랑 이야기이자 음악적인 이야기가 합쳐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총 368페이지에 달하는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어요. 1부가 발라드의 정서를 소개 및 정의하고, 3부가 다양한 형태의 곡들을 소개하며 발라드의 세계를 확장하는 이론서적인 면이 있다면 2부는 구성이조금 다릅니다. ‘조금씩 천천히’, ‘두번 다신’, ‘한 걸음 뒤에’, ‘그 소녀’, ‘재회 소망’ 등 한국 발라드의 정서에서 발현한 해시태그들로 다량의 곡을 감성적으로 소개합니다.

사실 2부가 원래 생각했던 방향성과 가장 가깝습니다. 곡 자체의 제목을 활용해 정서를 환기했다면 보다 와닿고 아름다울 수 있었을텐데 저작권 같은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죠.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기도 해요.


책을 통해 ‘발라드’를 이야기의 힘으로 전개되는 장르,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대중음악으로 정의했어요. 이문세 이영훈 콤비가 탄생한 1985년을 한국형 발라드의 원년으로 꼽았고요. 이처럼 평론가로서 개념이나 역사 등 짚어줘야할 맥락에 대한 고민은 없었을지

자신 있었어요. 제가 직접 그 시대를 겪으며 수십 년간 연구를 하기도 했고 사실 역사라는 게 해석하기 나름이기도 하니까요(웃음). 물론 어린 시절 들었던 음악이고, 그 시대를 살아온 X세대로서 이 부분은 틀리면 안된다는 부담감은 있지만 흐름은 이미 머릿 속에 짜여져 있는 상태에서 이론적인 건 나중에 덧붙였죠.

1980년대 가요의 시대부터 2020년대 K팝의 시대까지. 발라드의 정서를 공유하는 117곡을 통해 사랑의 언어들을 돌아본 책 <더 송라이터스>.

1980년대 가요의 시대부터 2020년대 K팝의 시대까지. 발라드의 정서를 공유하는 117곡을 통해 사랑의 언어들을 돌아본 책 <더 송라이터스>.


제목이 <더 송라이터스>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박주연, 이영훈 같은 작사가, 조동익, 박춘석 등 작곡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려고 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발라드는 가수의 예술이죠. 보통 발라드라고 하면 신승훈, 김범수, 나얼, 박정현 같은 가수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잖아요. 하지만 전 그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사실 어릴 때는 멜로디 ‘본위자’였어요. 멜로디가 좋아야 음악이 좋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며 어느 순간 돌아보니 멜로디는 첫인상일뿐, 가사가 와닿지 않은 곡은 제 마음 속에서 지속되지 않더라고요. 우리는 ‘가사’는 글이고, ‘멜로디’는 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음악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글로 표현하면 가사고, 멜로디로 표현하면 음인 게 아닐까. 책을 쓰면서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각자가 정서를 표현하는 도구가 다를 뿐인 거군요

멜로디를 만드는 사람들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그걸 음계로 옮기겠죠. 거기에 최적화가 된 사람이니까. 작사가도 처음부터 글이 떠다니는 건 아닐 거에요. 표현하고픈 감정이나, 곡을 받았을 때 멜로디를 글로 변환하는 거죠. 그런데도 작사가라고 하면 아무래도 작곡가의 하위 개념처럼 느껴지잖아요. 예를 들어 ‘달리기’를 윤상의 곡이지 박창학의 곡이라고 하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 곡을 사랑하고 위로받는 이유는 박창학 작사가의 가사가 미치는 영향도 큰데 말이죠. 해외 시상식에서도 발표할 때 ‘송 라이터 오브 더 이어(Songwriter of the year)’라고 말하지 작곡가, 작사가를 나누지 않거든요. 당연히 작곡, 작사에 한 사람이 다 관여할 수도 있고요. 그런 이야기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다 보니 어떤 결론에 이르러 이런 제목을 붙이게 됐죠. 이번 책 제목에서의 ‘송 라이터스’는 작사가들을 지칭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한국형 발라드는 이야기의 힘으로 전개되는 장르라는 앞의 정의와도 이어지는 셈이네요

어떤 사람들이 이 책을 찾아 읽을까 생각할 때 적어도 이 곡들을 알고 있는 세대들은 따뜻하게 추억을 공유하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뒷부분에 가요 시대 이후의 K팝 이야기를 넣은 것은 어떻게 보면 제 욕심이죠. 발라드라는 하나의 서정주의 장르가 예전에만 있었던 게 아니고, 지금과 연결돼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제가 갖고 있는 K팝 평론가로서 정체성도 드러내고요. 그런데 북토크에 오신 분들을 보면 연령대가 다양하더라고요. K팝 세대에 가까워 보이는 분들도 ‘명곡선’ 읽는 기분으로 읽었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빅데이터에 따르면 인류가 만든 노래의 90% 이상이 ‘사랑한다’는 표현의 변형이래요. 생각해 보니까 맞아요. 사랑 노래를 쓰고,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는 게 뮤지션들의 큰 창작 동기가 되기도 하고요.


무려 117곡이 들어갔지만 그럼에도 책 구성과 균형 조절 중 빠져서 아쉬운 곡도 있을까요

제가 심현보님 곡을 좋아하는데 나중에 보니까 없더라고요. 제 ‘최애곡’ 중 하나인 존박의 ‘Falling’도 가사적으로는 할 이야기가 적다 보니 빠지고, 신승훈 씨 노래도 개인적으로 더 좋아하는 ‘오랜 이별뒤에’가 아닌 ‘그 후로 오랫동안’이나 ‘보이지 않는 사랑’이 들어갔어요. 제가 하고 싶은 사랑 이야기를 최대한 하되 최애곡을 나열하는 것은 아니다 보니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좀 빈약하다 싶으면 빠진 거죠. 그런 면에서 015B, 윤종신, 토이, 이소은 씨 곡은 오히려 역차별을 당했습니다(웃음). 사실 가수의 균형감에 대한 생각도 처음에는 아예 못 했어요. 가장 처음 썼던 글이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 아니면 헤이즈의 ‘괜찮냐고’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것도 그냥 하고 싶은 말아서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지 전략적인 것은 아니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김영대 평론가가 한국 발라드를 이렇게 절절하게 좋아하는지 미처 몰랐기에 그 자체로 놀랐습니다(웃음). 발라드가 이렇게까지 사랑과 이별에 대한 장르였나 새삼스럽기도 했고요

소위 감수성 예민한 시절에 발라드의 전성기를 겪었으니까요. 빅데이터에 따르면 인류가 만든 노래의 90% 이상이 결국 ‘사랑한다’는 표현의 변형이래요. 생각해 보니까 맞아요. 사랑 노래를 쓰고, 누군가를 향한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는 게 뮤지션들의 큰 창작 동기가 되기도 하고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군요

그래도 한국은 유난히 발라드를 좋아하는 민족이라고 생각해요. OST도 대부분 발라드고, K발라드라는 말도 요즘은 있고, 굉장히 한국적인 특성을 보여줄 수 있는 음악이죠. 힙합은 당연히 미국이 풍부하겠지만 제가 보기에 발라드는 우리 나라가 미국, 영국만큼 풍성해요. 그런 면에서 K팝 시대에 한 번 되짚어볼만한 장르라는 생각도 든 거죠.


샤프, 윤수일 밴드, 빛과 소금, 이상은, 윤상, 김현철, 모노 등을 통해 한국의 시티팝을 설명하려 한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이 아티스트들을 구분지은 이유가 있을지

한국 발라드라는 장르를 정의하고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려면 이게 단일한 장르가 아니라 그 시대의 다양한 정서를 반영한 서정주의라는 걸 말해야 하는데 저는 1985년 이후 등장한 핵심적인 정서적 가치가 ‘도시성’, ‘세련미’라고 생각하거든요. 자동차에서 음악을 듣는 ‘마이카’ 시대가 도래했을 때 도시적인 감성과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그 이야기는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시티팝이라는 표현 자체는 회고적으로 붙인 표현이기는 하죠. 일본 시티팝조차도 그 때는 ‘뉴 뮤직’ 같은 표현으로 불렸지 시티팝이라고 분류하지 않았던 것처럼요. 하지만 시티팝이 발라드적 감수정을 실제로 많이 갖고 있다고 봐요. 윤수일 밴드의 ‘아름다워’나 모노의 ‘넌 언제나’는 유재하의 노래와 일맥상통하거든요.


K팝 시대의 발라드

최근 SBS <우리들의 발라드>가 사랑을 받으며 종영했고, 하반기 발표한 K팝 아이돌의 곡에서 예전 발라드 정서가 적극 구현되는 면도 있어요. 보이넥스트도어의 ‘있잖아’나 &TEAM의 ‘MISMATCH’ 같은 곡이죠. 2024년 여름 책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도 어떤 흐름을 감지했나요

‘촉’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아요. 평론가로서 몇 년간 키워드를 돌아보면 힐링 연대에서 진정성이나 나의 정체성, 나를 사랑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죠. 그렇다면 더 상위 개념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한 번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은 했습니다. 책 집필을 하던 중에 SBS로부터 새로운 발라드 경연 프로그램을 런칭하는데 다룰만한 곡을 200곡 정도 추천해줄 수 있냐는 연락을 받았어요. 제가 발라드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는 건 모르던 상태에서요. 돌아보면 걸그룹은 뉴진스를 시작으로 계속 서정적인 면이 있었고, 라이즈가 지난 여름 발매한 ‘Fly Up’ 같은 곡도 굉장히 서정적이라고 느껴져요. 예전 브로드웨이 느낌도 나고 곡이 기계적이거나 퓨처리스틱하지는 않잖아요. 이번 곡 ‘Fame’도 정서에 호소하는, 굉장히 ‘이모’스러운 옛날 K팝이죠. 그리고 지난 4월 데뷔한 클로즈 유어 아이즈 같은 경우는 보이 그룹이 이렇게 발라드적 감수성으로 서정적인 콘셉트를 내세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놀라웠죠. 제목부터 ‘내 안의 모든 시와 소설은’ 이니까요.


한동안은 많은 서정적인 곡들이 ‘이지 리스닝’이라는 명칭으로 ‘퉁’ 쳐지기도 했던 것 같아요. 아티스트 당사자도 심지어 자기 곡을 그렇게 이해하기도 하고요. 리스너로서는 장르적인 면에서 헷갈리는 면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지 리스닝’은 키워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음악적인 구분이 아니잖아요. '듣기 쉽냐'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죠. 예를 들어 저에게는 NCT 127 ‘Cherry Bomb'도 이지 리스닝인데, 충분히 그럴 수 있잖아요(웃음)? 오히려 서정성에 사람들이 반응하기 시작하면서 대중적으로 ‘이지 리스닝’이라는 단어가 유행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더 송라이터스> 출간을 기념해서 진행됐던 음감회.

<더 송라이터스> 출간을 기념해서 진행됐던 음감회.


K팝 아이돌 그룹 멤버가 이문세나 이소라, 유재하의 곡을 커버하는 건 음악성이나 화제성 모두 겨냥한 경연성 ‘치트키’ 같은 면모도 있습니다. 특히 유재하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보이넥스트도어와 코르티스 멤버가 연달아 커버하거나, 르세라핌 카즈하가 이소라의 ‘그대가 이렇게 내 마음에’를 커버한 것을 보면 소속사의 의도를 상상하게 되거든요

제가 알기로는 SM은 옛날 가요 명곡들은 어느 정도 많이 훈련을 시킨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실제 지금 한창 활동하거나 데뷔하는 2000년대 생들은 부모님이 발라드를 듣고 자란 세대예요. NCT 해찬 씨를 인터뷰로 만났을 때 이번 책을 선물했는데 자기도 어렸을 때 발라드 많이 들었다고, 어머니께서 나미의 ‘슬픈 인연’ 같은 걸 많이 들려주셨다고 하더군요. 생각해 보면 당연해요. 제가 부모님을 통해 비틀즈의 1960년대 곡을 청소년 시절 자연스레 들었던 것처럼 가요에도 클래식이 생긴 거죠. 저도 예전에는 옛날 발라드는 그 세대 사람들만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태연이 ‘화장을 고치고’를 부르는 걸 보면서 저렇게 젊은 가수도 이렇게 처연한 옛날 정서를 충분히 해석할 수 있구나, 받아들이게 됐죠. 물론 태연 자체가 너무 뛰어난 기량의 보컬리스트이기도 하지만요.


SM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S.E.S.의 ‘꿈을 모아서’가 발라드로 소개된 것은 반가운 한편 의외였습니다. 오히려 장르적으로 발라드와 좀 더 가깝게 느껴지는 포크록은 배제되고 댄서블한 곡들이 책에 포함됐다는 인상도 받았어요

실제로 “김광석이 왜 없나요?”’가 책을 내고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였어요(웃음). 그런데 가사나 서사로 봤을 때 김광석의 노래는 제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발라드의 정서와 좀 맞지 않았어요. 동물원의 노래가 들어가기도 했고요. 사실 발라드라는 큰 개념 아래 포크 발라드, 록발라드, R&B 발라드, 미디엄 템포 등 하위가 있다 보니 템포로 장르를 기계적으로 구분하기는 어렵다고 봤어요. 예를 들어 느린 곡도 사랑의 정서가 애틋하지 않다면 발라드가 아니다, 그건 제 귀가 구분을 하는 거죠. 저는 ‘꿈을 모아서’가 댄스곡 같지 않아요. 리듬감은 있지만 굉장히 사랑스럽고, 서정적인 곡이라고 생각하죠. S.E.S. 바다 씨에게도 “나는 ‘꿈을 모아서’가 발라드라고 생각한다. 이번 책에 들어간다”라고 말하니 격하게 동의하더라고요(웃음). 황현 씨도 샤이니 ‘방백’을 그렇게 생각하고, 계범주 씨도 세븐틴 ‘먼지’를 그렇게 생각해요. 오마이걸 ‘비밀정원’도 마찬가지에요. 작사가 서지음 씨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댄스 음악은 기본적으로 업비트에 신나야 하는데 ‘비밀정원’은 전혀 신나지 않아요. ‘먼지’도 템포만 빠를 뿐 오히려 아련하고 슬프죠.


창작자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확인하면서 책을 써내려가는 것도 김영대 평론가이기에 가능한 부분이었겠네요

책을 쓰면서 재미있었던 게, 가끔 쓰다가 너무 막히면 정말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께 물어봐요. “그때 이 표현을 왜 쓴 거에요?” 라고.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본인도 몰라요. 혹은 잊었어요. 이미 자신에게는 그게 더 중요한 얘기가 아닌 거죠. 창작자의 의도보다는 듣는 사람의 입장과 감상이 중요한 거에요. 책에 인용된 것은 많지 않지만 굉장히 많은 분들께 연락을 드렸어요. 장필순 곡에 많이 참여한 조동희 선생님, 박주현 작사가님, 원태연 작가님 등.. 그리고 그 뒷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는 되게 재미있죠.


음악은 추상적인 영역이라 왜 이게 아련한지, 슬픈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이 없어요. 평론가니까 그 감정의 층위를 근거있게 설명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글로 풀어내려고 수십 번을 들으며 이유를 찾는 거죠.


요즘에는 발라드와 한국식 R&B가 함께 묶여 서술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유영진, 솔리드, 휘성 등 한국 R&B를 따로 할애한 구간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전개방식이나 시그니처 사운드 등에 있어 한국 ‘발라드’를 구분해준다면

옛날 발라드는 청아한 키보드 사운드가 먼저 ‘쫙-’ 깔리면서 어쿠스틱 기타든, 키보드든 확실한 전주가 존재하죠. 바로 핵심으로 들어가지 않고 차분하게 벌스가 시작되고요. 전주-A 파트-B 파트- 후렴구- 브릿지 -간주- 그 다음에 다시 A 파트 이런 형식미가 옛날 발라드의 아주 특징이예요. 그리고 페이드 아웃으로 끝나는 곡이 많아요. 이건 사실 예전의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었는데 그렇게 녹음된 80,90년대 곡이 워낙 많다 보니 그런 연출만 나와도 듣는 입장에서는 아련해지죠(웃음).


이번 책에도 곡마다 유튜브 링크로 이어지는 QR 코드를 넣었습니다. 노래를 글로 설명한다는 것에 대한 고충과 회의를 느낄 때도 있지 않을지

음악이 들리지 않는 음악 책이라는 건 정말 요즘 같이 음악을 찾아 듣지 않는 시대에 너무 불친절하고, 상업적으로도 치명적이에요. 저는 그 QR 코드들을 꼭 쓰셨으면 좋겠어요. 노래와 같이 들으면 글만 볼 때는 건조하게 느껴지던 감정선이 확 와닿을 수도 있거든요. 특히 음악이라는 건 되게 추상적인 영역이라 왜 이게 아련한지, 왜 슬픈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이 없어요. 다만 평론가니까 그 감정의 층위를 반드시 근거있게 설명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글로 풀어내려고 수십 번을 들으며 그 이유를 찾는 거죠. 일일이 코드를 짚어보고, 코드 진행이랑 코러스 느낌이 달라지는 이유를 알고 싶어서 악보를 다운 받아 쳐 보기도 하면서요(웃음).


마지막으로 ‘한국 발라드 계보의 몇 안되는 합법적 상속자’라고 표현한 권진아 이야기를 해볼까요? 권진아 음악의 어떤 정서가 한국 발라드 같다고 생각하나요

감정선이 세련됨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 ‘운이 좋았지’가 대표적이지만 특히 타이틀곡들은 대부분 쭉 그래왔던 것 같아요. 작년 4월 발매된 3집 <The Dreamest> 타이틀곡 ‘재회’도 그렇고요. 이런 자기 연민이나 ‘찌질함’은 80-90년대의 산물이거든요. 요즘은 DM이나 텍스트 메시지로 감정을 서로 빨리빨리 확인하고,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결판이 빨리 나잖아요. 그런데 예전에는 바로 마음을 확인할 수 없어요. 감정선이 길게 늘어지다보니 항상 집착하는 것 같고, 얘 아니면 안될 것 같고 뭔가 ‘찌질’해요. 그런 뒤끝있는 감정을 권진아 씨는 너무 잘 담았죠. 그게 그 사람의 정서일 수도 있고, 어쩌면 지금 잘파 세대도 드러내지 않을 뿐 그런 감정을 갖고 있기에 그 노래들이 사랑 받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냥 쿨한 척 할 뿐인 거죠.

<더 송라이터스> 출간을 기념해서 진행됐던 음감회.

<더 송라이터스> 출간을 기념해서 진행됐던 음감회.


실제로 ‘20대 남성이 많이 들은 음악’ 같은 순위 보면 여전히 예전 발라드 정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곡들이 상위 포진되어 있잖아요(웃음). 최근 만난 2000년대 생 남자 아이돌은 10대 초반 때 허각 씨 곡을 많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책에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음원 시장에서 엄청난 지분이 있는 뮤지션들이 또 있죠. 그런 면에서도 유효한 감정이라고 보는 거에요. 아무튼 권진아는 정말 독보적이죠. 일단 노래를 너무 잘하고 목소리도 발라드에 최적화 됐는데 감정선은 제가 옛날에 들었던 윤종신 곡이나 거미, 린의 곡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거든요. 그런 면에서 합법적인 상속자라고 하는 거죠.


아쉽게도 ‘송 라이터스’라고 칭한 작사가들의 역할이 많이 흐려졌습니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의 노래가 정서적으로 와닿을 수 밖에 없는 건 콘셉트도 그렇지만 가사의 힘도 크다고 봐요. 신인 아이돌 중에서 작사 크레딧이 이렇게 한 두 명 이름으로 명확하게 떨어지는 팀이 켄지(KENZIE)가 ‘등판’한 NCT WISH나 Hearts2Hearts의 몇몇 곡을 제외하면 요즘은 거의 없거든요

영어 가사 비중이 커지는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겠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글 가사의 아름다움이나, 한 사람이 만들어낸 이야기의 중요성을 좀 생각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여러 명이 쓴 가사들 중에서 제 마음을 움직인 가사는 없는 것 같거든요. 비트나 음악은 외국에서 사 오더라도 가사는 우리가 붙일 수 있는데 모든 게 너무 세분화 된 건 정말 아쉬운 일이죠. 하다못해 제가 리뷰 글을 쓸 때도 어떤 부분은 누가 더 잘 아니까 그 부분만 다른 사람이 쓴다, 이건 말이 안되는 거잖아요. 한 명이 쭉 이야기를 해야 그게 본연의 이야기가 되는 거죠.


결과적으로 곡이 풍성해지는 게 아니라 결을 잃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가 책 뒤에 쓴 ‘사랑을 발라드로 배웠다’라는 쓴 것을 보고 사람들이 괜히 멋있어 보이려고 한 말 아니냐라고 하기도 하는데요. 저는 모든 사람이 같다고 생각해요. 노래를 듣기 전에 사랑이 어떤 감정인지 아는 사람이 있나요? 유치원 때 사랑에 빠지지 않는 이상 대부분 간접적으로 사랑을 먼저 체험하죠.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을 초등학생 때 들었어요.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합니다”라는 가사를 듣는 데 그냥 가슴이 너무 아픈 거에요. 그래서 그때 밖으로 나갔어요. 마당에 나가서 한동안 하늘을 보면서, 사랑이 끝나면 이런 감정을 느끼나 보다, 그냥 느꼈죠.


진짜 엄청난 로맨티스트네요

그런 게 좀 있어요(웃음). 스스로 말하는 게 좀 웃기긴 한데, 사랑에 대해서는 되게 공감하고, 섬세한 표현을 너무 좋아하고, 논리적으로 떨어지는 것보다는 전체적인 결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가사를 해석할 때 로맨틱 영화를 평론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해요. 영화도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거든요. 예를 들면 <카사블랑카>나 <노팅힐> 같은 것 정말 너무 좋잖아요.


그나저나 이 인터뷰 마치면 어디로 가세요? 직전에도 녹화 방송을 하나 마친 상태에서 만났습니다

집이요. 집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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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이마루
  • 사진 정지원(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