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에너지의 미래는 오고 있지만 과거도 끝나지 않았다

베네수엘라에서 이란까지, 오늘의 세계는 더 깨끗한 미래를 향해 가고 있지만 여전히 화석 연료의 질서에 발목 잡혀 있다.

프로필 by 정소진 2026.04.05

2026년, 세계는 이상한 두 장면이 동시에 돌아가는 시대다. 한쪽에서는 태양광과 재생에너지가 빠르게 늘어나고,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석유를 둘러싼 갈등과 전쟁이 반복된다. 하루를 여는 국제 뉴스에는 또 다른 분쟁이 뜨고, 우리는 세상이 어디까지 불안해질 수 있는지 가늠하기 바쁘다. 2025년 11월에 시작돼 2026년 2월에 종지부를 찍은 미국과 베네수엘라의 정유를 둘러싼 갈등은 그런 불안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보여주는 사례이며, 2026년 1월 니콜라스 마두로가 축출된 뒤 델시 로드리게스가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해도 베네수엘라는 여전히 권력 재편과 대외 압박, 석유 생산을 둘러싼 긴장 속에 놓여 있다. 석유가 만든 질서는 정권이 바뀐다고 끝나지 않는다. <뉴요커 The New yorker>의 존 캐시디 기자는 베네수엘라 유혈 사태를 ‘석유제국주의’로 불렀다. 과격한 표현 같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아이러니한 건 이런 일이 에너지 전환의 시대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케냐 리프트밸리 주 로기피 호수 위를 나는 분홍 플라밍고들.

케냐 리프트밸리 주 로기피 호수 위를 나는 분홍 플라밍고들.

지난 몇 년 동안 세계는 놀라운 속도로 청정에너지를 늘려왔다.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태양광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전기가 석유보다 저렴하고 안정적이며 폭넓게 접근 가능한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재생에너지가 기존 화석 연료 중심의 전력 체계를 흔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분명 희망적인 변화다. 동시에 세계는 석유 공급망 하나가 흔들리는 순간, 여전히 거대한 충격에 빠져든다. 이런 현실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이다. 이 전쟁은 한 지역의 군사 충돌로 끝나지 않는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높아지자 곧바로 국제 유가가 흔들렸고, 디젤 연료의 공급 불안이 번졌으며, 세계 경제 전반에 물가 상승 압력이 커졌다. 호르무즈 해협은 2024년 기준 전 세계 석유 소비의 약 20%에 해당하는 물량이 지나가는 핵심 통로다. 다시 말해 세계는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여전히 이 좁은 해협에 생활비와 물가, 경기 전망을 맡기고 있었던 셈이다. 세계가 재생에너지로 이동하고 있다 해도 땅속에 막대한 석유가 묻혀 있는 곳에서는 여전히 권력과 탐욕이 작동한다.


문제는 이것이 한 나라의 비극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금 새로 캐내려는 석유는 결국 더 많은 탄소 배출로 이어지고, 그 부담은 온전히 미래 세대가 떠안게 된다. 눈앞의 자원을 차지하려는 욕망이 다음 세대가 살아갈 행성의 조건을 갉아먹는 셈. 그래서 지금 가장 중요한 질문은 ‘왜 인류는 가장 빠른 속도로 에너지 전환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가장 낡은 방식으로 석유를 둘러싸고 싸우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왜 재생에너지 시대가 열리고 있는데 국제정치는 여전히 화석 연료의 언어로 움직일까? 왜 미래 산업과 구시대의 자원 전쟁이 같은 시간에 존재하는 걸까? 베네수엘라가 석유가 만든 오랜 권력의 민낯을 보여줬다면, 이란은 그 질서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희망과 퇴행이 동시에 진행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모순을 이해하려면 기후 위기를 환경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로 봐야 한다.

인도 팔리와 조드푸르 사이, 방게사르 인근 저수지의 물소들.

인도 팔리와 조드푸르 사이, 방게사르 인근 저수지의 물소들.


한편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 Foreign Policy>가 지적했듯, 앞으로 우리는 시간을 이해하기 위해 20세기의 인지 도구를 다시 꺼내 들어야 한다. 미국의 환경운동가 빌 매키번은 “태양광 패널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평화의 상징”이라고 했다. 한쪽에서는 태양광, 풍력, 전기차 같은 청정에너지가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석유와 가스가 군사력과 외교, 분쟁의 언어를 지배한다. 태양광 패널은 평화의 인프라가 될 수 있지만, 전쟁은 여전히 석유의 길을 따라 움직인다. 탈탄소는 단지 기술 전환이 아니라, 더 평화로운 세계로 가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2025년 11월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제30차 당사국총회(COP30)’는 이 불안한 세계사의 주요 분기점이었다. 이 시점에서 미국의 항공모함은 이미 베네수엘라 연안에 집결해 언제라도 공격할 태세였고, 유엔 회원국들은 1990년대부터 이어져온 이 정치적 의례를 위해 다시 모였다.


그러나 오늘날 이 회의는 세계를 통치하는 장이 아니라 세계를 읽고 각자의 자리를 가늠하기 위한 일종의 강신술처럼 보였다. 이제 유엔기후회의의 핵심 질문은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하나?’가 아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닥칠 것인가?’다. COP30은 한편으로는 전율을, 또 다른 한편으로는 깊은 우울감을 우리에게 안겼다. 전율이 느껴진 부분은 전례 없는 대중의 참여였다. 최근 몇 년간 극우의 부상과 인플레이션, 에너지 위기 속에서 환경주의는 죽었다고 말해 온 이들은 COP30 주변의 생동감을 직접 봤어야 했다. 강과 바다를 따라 도착한 원주민 공동체와 대서양 연안의 선단들, 회의에 참여하기 위해 강과 바다를 건너온 수만 명의 사람들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길었던 행진까지. 시장들, 활동가들, 원주민 공동체, 과학자가 함께 기후 위기와 마주할 해법과 새로운 공통 언어를 찾기 위해 모였다.


이 기사에 실린 이미지는 얀 아르튀스-베르트랑과 빌 프랑수아의 책 <freshwater the view from Above and the life Below>에서 가져왔다. 사진가이자 리포터, 영화감독인 얀 아르튀스-베르트랑과 생물물리학자이자 수생동물 전문가, 작가인 빌 프랑수아는 하늘에서 내려다본 지구의 표면을 하나의 대화처럼 엮어낸다. 독자가 그 시선을 따라 호수와 강, 물길 속으로 천천히 잠겨들도록 말이다.

이 기사에 실린 이미지는 얀 아르튀스-베르트랑과 빌 프랑수아의 책 <freshwater the view from Above and the life Below>에서 가져왔다. 사진가이자 리포터, 영화감독인 얀 아르튀스-베르트랑과 생물물리학자이자 수생동물 전문가, 작가인 빌 프랑수아는 하늘에서 내려다본 지구의 표면을 하나의 대화처럼 엮어낸다. 독자가 그 시선을 따라 호수와 강, 물길 속으로 천천히 잠겨들도록 말이다.

또한 이번 총회는 기후 적응 재원을 확대하고 정의로운 전환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데서는 일부 진전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COP30이 안겨준 우울한 측면은 두려움과 마비 속에서 막을 내렸고, 주목할 만한 성과도 내놓지 못했다는 점이다. 브라질까지 오기 위해 비행기들이 배출한 탄소를 정당화할 만한 어떤 실질적 조치도 없었다. 정치적 에너지는 분명 존재했지만, 그 에너지는 끝내 허비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브라질에서 희망적인 소식이 도착했다. 완강할 만큼 낙관적인 수십 개 국가가 새로운 약속을 잡은 것.


4월 말, 콜롬비아 산타마르타에서 화석 연료 퇴출을 주제로 한 첫 국제회의가 열린다. 그것도 석유의 저주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베네수엘라 국경 근처에서 말이다. 콜롬비아가 이 에너지적 · 정치적 혁명의 무대를 연다는 사실은 굉장히 상징적이다.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나라가 아니라, 20세기 동안 많은 나라처럼 석탄과 석유 같은 화석 연료 수출로 부를 쌓아온 국가가 이제 이렇게 되묻고 있다. 청정에너지와 전기차, 재생에너지를 향해 세계가 빠르게 움직이는 시대에, 우리는 누구에게 원유와 석탄을 팔 수 있을까? 그래서 콜롬비아 정부는 신규 유정과 광산 탐사에 제동을 걸었다. 다가올 미래를 이해하고 싶다면 4월 말 산타마르타에서 벌어질 일에 주목해야 한다. 해수면 상승에 위협받는 작은 나라들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호주처럼 화석 연료 생산국도 참석한다. 콜롬비아 회의의 결과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그 회의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미래는 여전히 긍정적이며, 아직 얼마든지 새롭게 쓰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 노르다우스트란데트 섬 남쪽 해안, 브로스벨브레엔 빙하 위의 폭포.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 노르다우스트란데트 섬 남쪽 해안, 브로스벨브레엔 빙하 위의 폭포.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전력 수요는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국제에너지기구는 데이터 센터와 인공지능 같은 새로운 디지털 인프라 그리고 폭염에 대응하기 위한 냉방 수요가 에너지 소비를 급증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에너지라는 파이는 해마다 커지고 있고. 미국에서 중국, 유럽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벌이고 있는 이 경쟁은 결국 우리의 생존과 지구의 미래를 건 경쟁이기도 하다.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25년에도 1.1% 증가했다. 지구의 안정성은 앞으로 몇 년 동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얼마나 많은 석유와 가스를 남겨둘지, 또 얼마나 많은 양을 대기 중에 태워버릴지에 달려 있다.


기후 위기의 영향 가운데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지구 평균기온 1.5℃ 상승은 다음 10년 안에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아직 완화할 수도 있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몇 년의 핵심어로 하나의 단어를 골랐다. ‘오버슛(Overshoot)’. 기후 안전 한계를 일시적으로 넘어서는 상태를 뜻한다. 강력하고 빠른 탈탄소화가 이뤄진다면 우리는 1.5℃를 넘더라도 너무 많이, 너무 오래 넘지 않은 채 세기말 이전에 다시 그 아래로 돌아올 수 있다. 충분히. 베네수엘라에서, 이란에서 그리고 국제회의장 안팎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건 하나다. 세계는 분명 에너지 전환을 말하고 있지만, 아직 화석 연료의 질서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 우리가 사는 시대의 진짜 전선은 바로 그 사이에 놓여 있다. 미래는 오고 있지만, 과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Credit

  • 에디터 정소진
  • 글 페르디난도 코투뇨
  • 사진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 암브르 델모트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