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LLIANT

어떤 주얼리는 부적이 되기도 합니다

특별한 순간과 소중한 사람에 대한 기억은 때로 주얼리에 머문다. 저마다의 기억을 담아 간직해온, 부적같은 주얼리에 대하여.

프로필 by 이유빈 2026.10.06

아빠의 오래된 하트

어릴 적 아빠의 작업실은 내게 익숙한 곳이었다. 가죽 냄새와 여기저기 놓인 금속 부자재,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를 오래된 샘플들. 아빠는 오랫동안 가죽을 다루는 일을 해왔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 공간을 드나들며 자랐다. 가죽과 금속처럼 투박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흔적이 남는 소재를 좋아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유학 생활을 마칠 무렵 코로나19가 시작됐고, 졸업과 동시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작은 작업실을 얻고 테이블 하나를 가져와 이것저것 만들어보던 시기였다.


그 무렵 아빠가 오래전에 디자인했지만 데드스톡으로 남아 있던 하트 펜던트를 다시 꺼냈다. 특별히 귀한 물건도, 소중하게 보관해 둔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갔다. 그 하트 펜던트를 그대로 되살리기보다 나만의 방식으로 다시 만들어보고 싶어 테이블 위에 부품을 늘어놓고 가죽 끈과 금속 장식을 이리저리 조합했다. 아빠의 오래된 작업에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 더해지며 지금의 하트 메탈 네크리스가 세상에 나온 순간이었다. 당시는 작은 작업실에서 만든 목걸이가 내 브랜드로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이후 메그킴을 론칭하며 처음 선보인 아이템이 되었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아이템으로 남았다.


아빠의 시간 속에 멈춰 있던 작은 하트 펜던트가 내 손을 거쳐 다시 세상에 나오고, 이제는 누군가의 목 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지금도 이 목걸이를 보면 아빠의 작업실과 그곳을 드나들던 어린 시절과 처음으로 나만의 것을 만들어보던 작은 작업실이 떠오른다. 아빠가 남긴 흔적과 첫걸음이 작은 하트에 담긴 셈이다. 돌이켜보면 이 하트 펜던트는 그동안 걸어온 길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아빠의 오래된 하트는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서 시작했는지를 기억하게 해주는 부적에 가깝다. - 디자이너 메그킴



어느 부부의 반지 이야기

이 반지를 낀 지도 벌써 2년째. 프러포즈 링은 남편이 설레는 마음으로 골랐던 터라, 웨딩 밴드를 고르는 일만큼은 왠지 내 몫처럼 느껴졌다. 마치 우리 커플과 결혼생활의 징표를 찾는 퀘스트였다. 거창한 마음가짐 때문이었을까? 유명한 브랜드를 돌아봐도 성에 차지 않았다. 어떤 건 너무 두껍고, 어떤 건 너무 얇았다. 또 어떤 건 너무 화려하고, 어떤 건 너무 투박했다(어떤 건 너무 비쌌다!). 결국 친구의 친구가 운영하는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에 원하는 부분만 모아 주문을 넣었고, 우리와 닮은 반지를 만났다.


한가운데 자그마한 루비가 박힌 옐로골드 반지. 결혼식 날 나는 바그너의 신부 입장곡에 맞춰 바닥에 수놓인 장미 사이를 걸었고, 우리는 버드나무 둥치를 타고 내려오는 진한 장미 물결 앞에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다. 손에는 빨간 장미와 햇살에 쨍하게 빛나던 안스리움, 화려한 실거베라와 애교스러운 글로리오사가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9월이지만 가을보다 여름에 가까운 더위였다. 빨간 꽃잎을 어색하게 내던지던 화동 조카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맺혔고, 오래전 아버님께서 새신랑이었을 때 맸던 자줏빛 나비넥타이도 아들의 땀으로 물들어갔다.


금빛 웨딩 밴드에 박힌 루비를 볼 때마다 그 후텁지근하게 붉던 가을날이 떠오르곤 한다. 마치 처음부터 그날의 색과 온도를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반지처럼. 그래서 이 반지는 내가 꿈꿔왔던 바로 그 웨딩 밴드다. 부부로서 손을 맞잡고 첫걸음을 내디뎠던 순간과, 앞으로도 손잡고 걸어갈 모든 날들이 담긴 물건. 함께 쌓아갈 시간을 묵묵히 지켜주는 우리만의 작은 부적이다. 2년 전의 하루가 작은 루비에 새겨졌듯 앞으로 수많은 날이 이 반지 위에 차곡차곡 쌓이기를. 오늘도 우리는 같은 반지를 왼손 약지에 낀다. - 변호사, 패션 블로거 김나현



나를 붙잡아주는 것

손가락 마디에 선명하게 남은 반지 자국과 살짝 변형된 손가락 모양을 볼 때마다 스무 살 시절이 떠오른다. 성년의 날, 엄마와 함께 골랐던 로즈골드빛의 작은 반지에는 양자리인 내게 어울릴 것 같아 선택한 별자리 모양의 큐빅이 박혀 있었다. 어른이라는 이름표를 달았지만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었던 시절, 엄마는 성년이 된 딸에게 첫 주얼리를 선물했다.


그날 이후 이 반지를 단 한 번도 몸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잠자는 시간에도, 샤워할 때도 늘 같은 자리에 머물렀던 반지는 어느덧 몸의 일부처럼 자리 잡았다. 중요한 선택 앞에서 마음이 요동치거나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면 무심코 반지를 만지작거리곤 했다. 익숙한 감촉과 조금 닳은 표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세월을 보내는 동안 반지도, 손가락도 서로의 모양을 닮아갔다. 완벽했던 동그라미는 조금씩 일그러졌고,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지킨 반지 탓에 손가락 역시 그 모양에 맞춰 조금씩 변해갔다. 반짝이던 큐빅도 하나둘 빠져 이제는 단 하나만 남았고, 매끄럽던 표면에는 크고 작은 긁힘이 생겼다.


나 역시 많이 달라졌다. 예상치 못한 기로 앞에 서기도, 수없이 흔들리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의 모양을 바꿀 만큼 긴 시간을 함께했다. 내게 이 반지는 단순한 주얼리를 넘어 삶을 함께 통과해 온 ‘무언가’에 가까워졌다. 오늘도 나는 이 반지와 하루를 시작한다. 일그러진 반지가 손가락을 단단히 감싸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흔들림이 와도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 에디터 강다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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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이유빈
  • 사진가 장승원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석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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