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줄리 커티스와 전시 '깃털로 만든 여인'과 펠리컨 작품에 대하여

아름답고 숭고한 엄마라는 존재, 그 이면을 그리는 줄리 커티스의 한국 첫 개인전 <깃털로 만든 여인>.

프로필 by 정소진 2025.11.26
엄마가 된 이후 마주한 내면의 변화, 여성으로서 정체성과 존재의 이면을 탐구하는 <깃털로 만든 여인>은 줄리 커티스의 첫 한국 개인전. 2026년 1월 10일까지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전시된다.

엄마가 된 이후 마주한 내면의 변화, 여성으로서 정체성과 존재의 이면을 탐구하는 <깃털로 만든 여인>은 줄리 커티스의 첫 한국 개인전. 2026년 1월 10일까지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전시된다.


이번 전시 제목 <깃털로 만든 여인>은 굉장히 시적이다. ‘깃털’이라는 소재에 담긴 의미는

<깃털로 만든 여인>은 출산 후 두 번째로 여는 전시라 개인적으로 큰 전환점이다. 출산 후 몇 달간 불안과 우울이 겹친 시간이 힘들었고, 모성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대신, 그 안에 존재하는 어둠과 고됨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깃털은 이번 전시를 하나로 묶는 상징이다. 전시를 준비하며 처음 그린 작품 ‘펠리컨(Pelican)’(2025)에서 드러나듯 펠리컨의 단단하고 어두운 부리와 부드럽고 하얀 깃털의 대비는 아름답고 숭고하게 여겨지는 모성 뒤에 있는 고단함과 어둠을 표현한다.


당신이 그린 펠리컨에는 종교적 · 연금술적 · 정신분석학적 상징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플로리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펠리컨은 크고 아름다운 동시에 강렬한 존재감을 가진 새로, 자연스럽게 이 새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큰 부리는 아기의 요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황새가 아기를 물어준다’는 말과도 이어진다. 정신분석학에서 언급되는 이 새에 대해 심리학자 카를 융은 ‘변화와 자기 재생의 은유’로 설명했는데, 개인적으로 엄마가 되면서 겪은 심리적 변화나 성장 과정과 맞닿은 것 같고, 종교적 이야기 중에는 펠리컨이 자신의 가슴을 찢은 피로 새끼를 먹이기 때문에, 모성의 희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폭력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이 모순이 모성의 양면성과 닮아 있어 작품에 적합했다.


출산 후 첫 그림으로, 펠리컨의 단단한 부리와 부드러운 털의 대비가 모성의 명암을 담고 있다. ‘펠리컨(Pelican)’(2025).

출산 후 첫 그림으로, 펠리컨의 단단한 부리와 부드러운 털의 대비가 모성의 명암을 담고 있다. ‘펠리컨(Pelican)’(2025).


‘밤의 방문자(Nocturnal Visitor’(2025)에 등장하는 펠리컨과 넓적부리를 가진 황새의 혼종으로 탄생한 새는 ‘모성적이면서도 괴기스럽고 악마적’인 존재로 묘사했다

악마적이기보다 짓궂고 마법 같은 존재로 설정했다. 밤에 돌아다니며 침실로 침입하는 새, 그 모습에 위협적인 분위기가 필요해 두 새를 섞었다. 이 혼종 새는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문을 지키는 수호자 역할로, 그 새를 지나면 어두운 무의식 세계가 펼쳐지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 엄마라는 존재가 느끼는 억압된 감정과 불안의 표상이다.


검정색 공갈 젖꼭지와 젖병, 막대사탕, 유모차 같은 사물도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런 오브제는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상상과 감정을 투사하는 대상이다. 아이는 처음엔 세상이 완벽하고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원하는 것이 모두 충족되지 않는 현실을 배운다.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콧은 이 현실과 환상 사이의 공간을 ‘전이적 공간’이라고 설명했는데, 이처럼 아이가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표현하는 자아와 외부 기대에 맞춰 형성된 방어적 자아를 연결하는 사물을 작품에 담으려 했다.


구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L'Origine du Monde)(1866)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여성의 몸과 사회적 역할을 유쾌하게 비튼다. 침실인지 부엌인지 모를 모호한 배경은 기묘함을 자아낸다. ‘거품기를 든 여자(Woman with a Whisk)’(2025).

구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L'Origine du Monde)(1866)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여성의 몸과 사회적 역할을 유쾌하게 비튼다. 침실인지 부엌인지 모를 모호한 배경은 기묘함을 자아낸다. ‘거품기를 든 여자(Woman with a Whisk)’(2025).


작품 ‘외프 알 라 코크(Oeuf a‵ la Coque)’(2025), ‘거품기를 든 여자(Woman with a Whisk)’(2025) 등에서는 일상의 가사 노동과 에로티시즘이 공존한다

출산 후 내 안에 엄마, 여성, 개인 등 여러 자아가 생겼고, 이것들을 조화시키기 위한 고민 끝에 가사와 재생산 노동, 여성의 몸과 사회적 역할을 유쾌하게 표현했다. 사회적으로 섹스와 출산이라는 자연스러운 번식 과정이 금기처럼 여겨지는 부분에서 괴리감을 느꼈고, 이 인식을 비틀고 싶었다. 작품 ‘거품기를 든 여자’ 속에서 가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채 가사 노동을 하는 여자는 여성 혹은 엄마 역할의 균열을 담았다.


앞으로 자신의 작업에서 탐구하고 싶은 상징과 주제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출산과 닮아 있다. 이번에는 출산을 다뤘으니 다음 주제는 ‘늙어감’이 아닐까? 무언가 늙고 낡아가는 과정은 해체이지만, 동시에 아름다움이 깃든 과정이기도 하니까. 이런 상반되는 미학에 관심이 있고, 앞으로 좀 더 심리적이고 보편적인 주제를 다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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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정소진
  • 사진가 김민석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민홍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