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드로잉이 바꾼 작가 김경주의 일상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법. <언폴드>는 매일 새벽 드로잉으로 어둠 속의 자신을 치유한 김경주 작가의 담담한 고백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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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무너짐은 찾아온다. 삶의 균열이 한꺼번에 밀려오던 시기, 브랜딩 디렉터이자 작가 김경주는 자문했다. ‘다시 일어나기 위해 무얼 해야 할까?’ 그녀는 거창한 변화 대신 작은 루틴을 선택했다.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고요한 방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 그렇게 3년간 이어진 새벽 드로잉은 그의 삶을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바꿔 놓았다. 상실과 회복, 성장의 여정을 따라 한 사람이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담은 책이 바로 <언폴드>다. 담담한 글과 선으로 ‘다시 펼칠 용기’를 전하는 김경주 작가를 만났다.
드로잉을 처음 시작한 날의 감정을 회고한다면
당시엔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남에게는 괜찮다 했지만 괜찮지 않았다. 무엇보다 스스로 솔직하지 못한 하루를 당장 끝내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처음에는 텅 빈 노트를 펼쳐 생각하는 사람의 얼굴을 그렸다. 그러고는 이렇게 썼다. ‘내 생각이 나를 만든다.’ 그것이 3년째 이어온 새벽 드로잉의 시작이었다.
수많은 회복 방법 중 왜 드로잉이었을까
필사나 운동, 독서 챌린지 등 다양하게 시도해 봤다. 모두 내게 맞지 않았다. 중간에 포기하면 또 실망하거나 자책감이 들어서 낙서하듯 그림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내면을 돌아보고 표현하는 게 좋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 그림과 글귀에 위로받고 서서히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외할아버지 장욱진 화백을 꿈에서 마주한 경험도 드로잉을 시작한 계기가 된 걸로 안다. 꿈속에서 할아버지에게 건네받은 ‘빨간 봉투’를 어떤 메시지로 해석했나
보통 조상이 꿈에 나오면 로또를 살 만큼 길몽이라고 하지 않나(웃음). 이 꿈을 비밀로 해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복이 달아날까 봐 엄마에게만 얘기했다. 당시 나는 불안감에 많이 사로잡혀 있었는데, 외할아버지께서 나를 안심시켜 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늘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 편에 있었고, 그 꿈을 꾼 이후로 바로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1000여 점의 드로잉 중 절반 정도가 <언폴드>에 담겼다. 책에 실을 드로잉을 고르는 과정은 ‘나를 다시 읽는 경험’이었을 것 같다
처음엔 예전 드로잉을 아카이빙할 수 있는 기회라고 즐겁게 생각했다. 근데 그 안에서 힘들었던 ‘과거의 나’와 만나면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보통 영감을 멋지고 새로운 곳에서 많이 받는다는데 나는 대부분의 영감을 ‘과거의 나’에서 얻는다. 못난 내 모습을 회상하며 반성하기도 하고, 순수했던 모습을 보며 그리워하기도 하고, 그때는 몰랐지만 잘했던 부분은 칭찬하기도 하면서 작업을 이어 갈 수 있었다.
드로잉에 포함된 문구들은 담담한 자기고백 같기도, 다정한 조언 같기도 하다. 독자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간절히 원하는 것을 떠나보냈을 때, 비로소 모든 것을 얻었다.’ 책에 등장하는 문장이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다. 그렇게 간절히 원하고 쫓았던 특별한 것들이 삶에서 거둬지니, 삶의 본질만 남더라. 가족의 사랑이나 우정, 이웃들의 따뜻함, 건강 등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 행복은 멀리서 찾는 기적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있는 사소한 것이라고 꼭 전하고 싶다.
3년간 매일 드로잉하는 루틴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 요소는
단순한 환경과 마음가짐, 계획성이다. 주변이 깨끗하고 정갈하게 정돈돼 있어야 시간과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무엇보다 다른 이들의 생각이나 태도처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파워J’의 성향상 짜인 것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편이다. 정해진 일과는 나처럼 자유로운 일을 하는 사람에게 무척 중요하다. 창의력은 단단한 뿌리에서 열매를 맺는다.
김경주 작가의 새벽 드로잉 1000여 점 중 544점을 엮어낸 아트 북 <언폴드>. 이 책에는 장욱진 화백의 외손녀로서 이어받은 예술적 감수성과 스스로 지탱해 온 그의 성실함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진정한 ‘나다움’은 어떤 의미인가
과거엔 겉으로 보여지는 게 ‘나다움’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표현 수단이 될 수는 있어도 결국 마음이 편치 않으면 내게 맞지 않은 것이라는 걸 배우는 데 많은 대가를 치렀다. 진정한 ‘나다움’은 자신에게 솔직한 것, 내면이 평온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환경, 일 그리고 물건도 말이다.
<언폴드> 마지막 챕터엔 ‘확장’의 여정이 담겨 있다. 앞으로 어떤 확장을 꿈꾸나
단순한 삶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거창한 계획보다 매일 충만하게 보내면서 다음 장을 넘기는 게 목표다. 앞으로 독자들이 그림을 다양한 형태의 제품으로 만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물론 새벽 드로잉도 계속 이어갈 것이다.
Credit
- 에디터 길보경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 COURTESY OF KIM KYUNG JU
- COURTESY OF WHO’S GOT MY TAIL
엘르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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