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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식사를 떠올리면서 ‘탄단지’ 비율과 칼로리부터 계산하는 시대는 지났다. 지금의 웰니스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진다. ‘오늘 내 접시는 몇 가지 색을 담고 있을까?’ 접시를 가능하면 다채로운 색으로 채우는 ‘레인보우 식습관(Rainbow Eating)’으로 균형 잡힌 영양 섭취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개념이다.
식탁에 필요한 건 레서피가 아니라 컬러
파리에서 광고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루시와 필레몽 가족의 일요일 브런치는 이런 철학을 가장 잘 보여준다. 식용 숯을 넣은 검은 바게트, 선명한 자홍빛의 비트 후무스, 절인 레몬을 곁들인 팬케이크, 향신료를 듬뿍 넣은 오렌지와 단호박 잼까지. 한 폭의 정물화 같은 식탁 앞에서 두 아이는 평소라면 손도 대지 않았을 채소를 거리낌 없이 맛본다. 이유는 단순하다. 보기 좋은 음식이 곧 먹고 싶은 음식이 됐기 때문이다.
푸드 스타일리스트이자 <컬러 푸드> 저자 에브 카르디(E′ve Cardi)는 “사람은 입보다 눈으로 먼저 음식을 먹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음식을 아름답다고 인식하는 순간 식욕은 자연스럽게 깨어난다. 루시와 필레몽 역시 이 원리를 일상에서 활용한다. 크레페 반죽에 시금치를 넣어 선명한 초록빛 팬케이크를 만들고, 적양배추는 크리미한 스프레드로 변신시킨다. 아이들에게 채소를 먹이기 위한 ‘요령’처럼 보이겠지만 이 작은 변화는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색은 식욕을 자극하는 시각적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영양학에서 식재료의 색은 그 안에 담긴 영양 성분을 암시하는 하나의 언어다. 빨강과 보라에는 폴리페놀과 안토시아닌이, 짙은 초록에는 엽록소와 마그네슘이, 주황과 노랑에는 카로티노이드가 풍부하게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색이 달라질수록 우리 몸이 받아들이는 미량 영양소의 스펙트럼 역시 넓어지는 것.
때문에 생물학자이자 영양학자인 에바 바쇼(Eva Vacheau)는 끼니마다 접시 위에 적어도 세 가지 이상의 색을 담는 식습관을 가장 쉽고 직관적인 건강 관리법으로 꼽는다. 완벽한 식단을 계획하지 않아도 괜찮다. 구운 채소를 한 가지 더 올리거나, 파슬리와 바질 같은 허브를 마지막에 흩뿌리는 것만으로도 식탁은 훨씬 풍성해진다. 늘 먹던 초록 채소에 노란 파프리카를 더하고, 보라색 양배추를 곁들이는 작은 변화만으로도 몸은 다양한 영양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기분에도 컬러가 있다
몸이 피곤한 날과 마음이 지친 날, 우리가 찾는 음식은 조금씩 다르다. 초콜릿이 땅기기도 하고, 따뜻한 수프 한 그릇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 우연처럼 느껴지지만 몸은 이미 필요한 영양을 본능적으로 찾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양학은 음식의 색을 시각적 요소가 아닌, 몸의 컨디션을 읽는 하나의 힌트로 본다. 가장 먼저 눈여겨볼 색은 초록. 스트레스가 쌓이고 긴장이 계속될 때 짙은 녹색 채소는 훌륭한 선택이 된다.
시금치와 케일, 브로콜리 같은 채소에는 마그네슘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데, 이는 신경계를 안정시키고 기분과 긴장을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쁜 하루 끝에 초록빛 샐러드가 유난히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활력이 떨어지는 날에는 접시에 따뜻한 주황을 더해보자. 당근과 단호박, 고구마처럼 카로티노이드가 풍부한 식재료는 에너지 대사에 필요한 비타민을 공급해 몸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노란빛 강황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웰니스 신(Scene)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골든 밀크’의 주인공인 강황은 항염 작용을 통해 몸의 균형을 돕고, 전반적인 컨디션 관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집중력이 흐려지거나 머리가 무겁게 느껴질 때는 빨강과 보라가 답. 블루베리와 라즈베리, 체리처럼 짙은 색을 띠는 과일에는 폴리페놀이 풍부해 뇌 건강과 기억력 유지에 도움을 준다. 말하자면 가장 아름다운 색이 가장 강력한 영양을 품고 있는 셈.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색도 있다. 검정과 흰색이다. 화려한 컬러에 비해 존재감은 크지 않지만 영양만큼은 뒤지지 않는다. 흑마늘과 검은깨에는 강력한 항산화 성분이 농축돼 있으며, 마늘과 양파, 콜리플라워처럼 흰빛을 띠는 식재료에는 면역과 해독 작용에 도움을 주는 유황 화합물이 풍부하다. 닭고기와 두부, 달걀흰자, 요거트처럼 담백한 흰색 단백질 역시 뼈와 근육, 신경 건강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다.
물론 음식의 색으로 모든 걸 판단할 수는 없다. 특정 컬러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다양한 색을 식탁에 올리는 것이 핵심이라는 게 중요하다. 어제보다 오늘 점심 메뉴에 한 가지 색을 더해도 충분하다. 작은 변화가 쌓일수록 몸은 더 다양한 영양을 받아들이고, 식사는 좀 더 균형 잡힌 습관이 될 테니까.
숫자가 아닌 감각으로 먹기
우리는 오랫동안 음식 앞에서 ‘효율’을 따져왔다. 단백질은 충분한지, 탄수화물이 너무 많지 않은지, 칼로리는 적당한지. 건강한 식사가 숫자의 영역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제부터 완벽한 식단을 설계하기보다 식탁 위에 색을 하나 더함으로써 건강을 ‘감각’으로 이해해 보자.
실제로 다채로운 색을 의식하면서 식사를 준비하면 자연스럽게 제철 식재료와 다양한 채소, 과일에 손이 갈 수 밖에 없다. 익숙한 메뉴에도 새로운 조합을 시도하게 되고, 한 접시를 구성하는 과정 자체가 작은 창작 과정이 되는 것. 영양을 채우기 위한 요리가 취향을 표현하는 시간이 되면 삶의 결이 훨씬 풍부해진다.
이런 변화는 식탁을 넘어 일상의 태도로 이어질 수 있다. 바쁜 하루를 보낸 뒤 ‘귀차니즘’을 무찌르고 허브 한 줌을 올리는 정성을 들인다거나, 잘 익은 토마토를 썰어 곁들인다거나, 보랏빛 양배추를 샐러드에 더하는 작은 선택들. 분명 손이 한 번 더 가지만, 몇 분의 여유는 식사를 훨씬 풍요로운 경험으로 바꾸기에 충분하다. 오늘 내 몸에 필요한 색은 무엇인지, 어떤 식재료가 지금의 나를 가장 기분 좋게 만들지 고민하는 순간, 먹는 일은 생존 행위가 아니라 삶을 즐기는 방식이 된다. 2026년 지금의 웰니스가 이야기하는 것은 거창한 루틴이나 극적인 변화가 아니라 사소한 감각의 회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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