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상사와 계급장 떼고 피 튀기게 싸우는 영화가 있다?
직장상사랑 무인도에 떨어졌는데도 웃음이 터지는 호러 블록버스터 '직장상사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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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직장상사 길들이기>의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일요일 밤만 되면 괜히 명치께가 답답해지고 잠이 안 오는 증상, 당신이 직장인이라는 증거입니다. 물론 일과 직장이 너무 좋고 동료들을 사랑하는 직장인은 실존합니다. 다만 그들은 월요일을 기다리며 애초에 잠이 들었을 거예요. 남은 건 출근하기 싫은 직장인들의 아우성이죠. '직장'이나 '상사'라는 단어 자체에 부정적 감정이 먼저 드는 건 이 볼멘소리가 직장인의 목소리를 과대표하기 때문인 걸까요? 아니면 불만 많은 직장인은 그렇지 않은 직장인보다 나약하다는 뜻일까요?
영화 <직장상사 길들이기>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직장인은 직장을 선택할 수 있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은 고를 수 없습니다. 뭐가 안 맞아도 안 맞게 되어 있습니다. 상식인들과 함께 완벽한 선진 조직 문화를 만들어가는 직장 생활은 그저 이상에 불과할 지도 모릅니다. 내가 '빌런'일 경우도 결코 배제해선 안되고요. 직장에서 겪는 문제들의 근원을 집요하게 파헤치면 거기엔 사람이 있습니다. 경직성이나 나태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괴롭힘도 정치도 싸움도 사람이 합니다. 그 중에서도 윗사람, 특히 직속 상사와 궁합이 안 맞는 건 최악이죠. 더해서 누가 봐도 '나쁜' 상사를 만나면 직장은 지옥이 되기 마련입니다. 퇴사 고민 사유를 설문하면 무조건 다섯 손가락 안에 '상사 갑질'이 거론되는 이유입니다.
영화 <직장상사 길들이기>는 아주 도식적이며 과장된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의 갈등으로 출발합니다. 주인공 린다(레이첼 맥아담스)는 일은 잘 하지만 눈치가 없어 직장에서 은근히 따돌림을 당해요. 외로운 린다의 유일한 친구는 반려 동물이고, 취미는 오지 서바이벌 예능 시청입니다. 그런 린다는 회장으로부터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고 임원 승진까지 내정된 상황이에요. 그런데 회장이 갑자기 죽고 아들인 브래들리(딜런 오브라이언)가 회사를 물려받습니다. 능력은 없는데 안하무인인 브래들리는 왠지 비호감인 린다 대신 골프 같이 치는 대학 동아리 후배에게 임원을 맡기려 합니다. 린다가 이에 반발하자, 브래들리는 "호감도 높은 사람이 참모로 필요하다"라며 "여자라 그런 배짱은 없을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쳐들어온 건 인정한다"라고 막말을 쏟아냅니다. 눈물을 삼키며 돌아서는 린다에게 공개 망신까지 줘요.
영화 <직장상사 길들이기>
하지만 브래들리는 당장 중요한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린다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출장길에 오르죠. 하지만 갑작스런 비행기 추락 사고로 동행한 인원은 전부 죽고, 린다와 브래들리만이 무인도에 떨어집니다. 서바이벌 예능으로 단련된 생존 전문가 급의 린다와, 골프나 칠 줄 알았지 생존 능력이 한없이 0에 수렴하는 브래들리의 관계는 이 공간에서 완전히 역전됩니다. 다리가 부러져도 여전히 '갑질'을 하려는 브래들리에게 린다는 말합니다. "아직도 여기가 회산 줄 아나 보네?"라고 말이에요.
언급했듯 <직장상사 길들이기>는 이 같은 '갑을 역전극'의 과장된 도식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다음이 예측될 것만 같고, 린다는 계속 통쾌하게 복수할 것만 같습니다. 분명 결말은 예상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예측을 불허합니다. 샘 레이미 감독이 한국 취재진에 말한 것처럼, 관객은 두 사람이 섬에 머무르는 동안의 엎치락뒤치락을 지켜보다가 양쪽 입장에 반드시 한 번 씩은 몰입하게 돼요. 결국엔 린다와 브래들리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하거나 둘 모두의 편이 되고 말죠. 샘 레이미 감독 특유의 연출이 이 같은 감정의 파도에 엔터테인먼트를 부여하고요.
영화 <직장상사 길들이기>
도심의 오피스에 비하면 아무것도 없는 듯하지만, 결국 모든 걸 품고 있는 무인도는 자이나브 아지지 프로듀서의 설명대로 영화 속 하나의 캐릭터로서 생동합니다. 시의적절하게 비바람과 파도를 뿌리고, 조금 노력하면 보상으로 물과 식재료를 제공하는 식이죠. 또 린다와 브래들리를 강제로 '계급장 뗀' 자연인 상태로 만드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둘 밖에 없는 작은 사회에서도 평등을 견디지 못하고 주도권 싸움을 해야 하는 건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르겠군요.
재미있는 건 상사와 갈등을 겪는 직장인의 꿈 이야기 같은 이 영화의 메시지가 굉장히 현실적이라는 점입니다. 회사 밖에선 직장상사도 부하직원도 그저 인생의 '등장인물 1'에 불과하단 사실이 무인도에서 폭로됐죠. 그럼에도 누구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날 지 모르니 잘 살아야 한다는 어른들 말씀도 떠올라요. 두 명제는 완전히 다른 말이지만 결국 한 목소리로 겹칩니다. 믿을 건 오직 나 자신 뿐이란 진실입니다. 영화의 원제처럼 'SEND HELP', 구조 신호를 바깥에서 찾으면 그저 기다리는 사람이 될 뿐이란 거예요.
영화 <직장상사 길들이기>
린다의 신발은 <직장상사 길들이기>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장치입니다. 영화는 어디서든 신발을 소중히 다루는 린다의 모습을 종종 비추는데요. 신발은 그가 스스로를 믿고 해 왔던 '준비'의 은유로 읽힙니다. 서바이벌 예능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낼 수 있는 자신감은 이 준비에서 나옵니다. 덕분에 갑자기 시작한 무인도 생존게임에서도 곧바로 적응할 수 있었고요. 이직 혹은 퇴사를 생각하는 모든 직장인들의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샘 레이미 감독이 만든 긴장 속 외줄타기를 하다가 극장을 나오면 갑자기 이런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 슬프지만요. 영화는 28일 개봉합니다.
Credit
- 에디터 라효진
- 사진 소니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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