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흑백요리사2의 아는 맛에 다시 빠진 이유

경쟁과 연대는 가니시일 뿐이다. 지겹고 뻔한 ‘맛 표현’을 가볍게 제압하는, 셰프들의 정확하고 선명한 맛 프레젠테이션.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2'에 다시 빠진 이유.

프로필 by 이경진 2026.01.29

지난해에 나는 배우 김우빈에게 크게 빠졌다. tvN <콩콩팡팡> 속에서 그가 했던 단 두 개의 ‘맛 표현’이 내 이마와 심장을 두들겼다. 그는 멕시코 음료 ‘오르차타’를 맛본 후 “어릴 적 세수한 후 엄마가 발라준 화장품이 입 안에 살짝 들어간 느낌”이라고 했다. ‘칠레 앤 노가다’는 “결혼식 뷔페 접시 위에 여러 음식을 올려 자연스럽게 서로 스며든 맛”이라고도 했다. 아, 매거진 F&B 에디터로 일할 때 왜 이런 표현을 쓰지 못했지? 이마를 탁 치고 그 자리에서 한참 멈춰 있었다.


맛 표현이 신선해서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모든 ‘덕통사고’가 요즘 엔터테인먼트 속 표준이 된 진부한 ‘먹방’과 ‘맛 표현’의 반사 효과라는 걸 깨달았다. 그놈의 ‘미간이 말해 주는 진실의 맛’이라든가, ‘본연의 맛이 살아 있다’는 하나 마나 한 공허한 요리 설명이라든가, 그저 열심히 구겨서 먹기만 하는 한 무더기의 음식이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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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호스트가 되는 다채롭다 못해 혼란스러운 미디어 환경 속에서 ‘음식’은 어느 때보다 그 자체로 엔터테인먼트가 됐지만, 요리나 먹는 즐거움을 설명하는 방식은 열 걸음 퇴보했다. ‘올해 고든 램지가 환갑이다. 언제 적 요리 경쟁 프로그램이야?’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을 시청하다 보면 그 면면의 밀도가 이보다 더 시의적절할 수 없다는 생각에 빠지게 되는 이유다. 다소 납작해진 스트리밍 미디어 현실이 오히려 평범한 것을 더 새롭고 가치 있게 만드는 걸까?


2000년대 중반, 쏟아지는 요리 경쟁 프로그램을 보면서 ‘치열함으로 완성되는 프로다움’ ‘링 아래에서 보는 주방의 재미’를 강렬하게 느꼈다면 최근 <흑백요리사>를 보면서는 ‘수련자의 확신과 품격’ ‘디테일하게 설계된 요리의 재미’를 더 많이 느낀다. 그래서 나에게 <흑백요리사>는 요리 경쟁 프로그램이 아니라 요리 갱생 프로그램에 가깝다. 요리를 이해하는 즐거움을 회복시켰달까? 요리가 다시 말이 되고 설명이 되는 이해의 영역으로 돌아왔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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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간 매거진 소속 에디터로 일하면서, 인터뷰하기 정말 어려운 두 부류의 직업군을 경험했다. 셰프와 운동선수. 이들에게 전문성이란 이론이나 글자로 습득한 것이라기보다 백 번 천 번 반복해서 체득한 것에 가깝다. 때문에 자신의 감각을 이해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에디터에게 스스로 깨달은 바를 몇 마디로 표현하는 걸 꺼리는 것 같았다.


언제나 나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왜 그런가요?”라고 되묻기 바빴고, 셰프나 운동선수는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라는 말로 단답의 길이를 조금 늘리곤 했다. 재능이 일천한데도 내가 요리학교를 진학해 졸업장까지 딴 이유에는 인터뷰 기회가 왔을 때 셰프가 쳐둔 이 설명의 문을 조금이라도 넘어볼까 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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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는 나처럼 부족한 인터뷰어나 한정적인 지면 따위와 상관없이 셰프의 머릿속에서부터 소비자의 심장까지 직통으로 연결되는 고밀도·고농도 인터뷰다. 현장 동행, 밀착 취재, 본지 단독, 심층 보도를 뛰어넘는 알짜 인터뷰 그 자체다. 물론 편집과 의도가 관여하는 예능 콘텐츠이지만, 이 요리는 어떤 의도로 만들었고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됐는지, 그 셰프의 차별점은 무엇이고,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화면 너머로 파악할 수 있는 건 확실히 흔하지 않은 경험이다.


셰프의 철학과 서사를 이해할 수 있기에 비로소 요리가 정확하게 설명되고, 조리 과정이 재미있어진다. 거대한 스케일의 경쟁과 연대의 포맷은 셰프와 요리를 선명하게 만드는 장치일 뿐이다. ‘만찢남(시즌1, 조광효)’이 늙은 호박 요리에 열두 방울의 마라 오일을 넣는다는 사실을, ‘4평 외톨이(시즌2, 김상훈)’는 떡갈비를 치댈 때 치댄 횟수를 입으로 왼다는 사소한 정보도 극적인 상황 덕에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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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경쟁자(선재 스님)와 동등한 재료 조건을 만들어 요리하는 ‘뉴욕에 간 돼지국밥(시즌2, 옥동식)’의 태도, 악착이 뚝뚝 떨어지는 ‘철가방 요리사(시즌1, 임태훈)’의 눈빛, “나의 경쟁자는 나 자신”이라는 표어 같은 말을 ‘무한 요리 지옥의 접시’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증명해 낸 에드워드 리(시즌1), 고이 접어 나빌레라 경지에 오른 후덕죽(시즌2)의 단정하고 침착한 손끝과 동선도 <흑백요리사>가 아니었다면 쉽게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수십 명의 숙련된 셰프와 그들의 요리를 이렇게 속속들이 알게 되는 게 뭐가 좋으냐고? 누가 진짜배기인지 가려내자고? 셰프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하자고? 아니다. 다시 처음의 김우빈 이야기로 돌아간다. 잊고 있었던 맛의 재미를 깨우는 강력한 한 방, 그러니까 요리를 대하는 즐거움을 핀셋으로 하나하나 살려내는 강력한 촉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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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의 진짜 효용가치는 이것 아닐까? 오묘한 감정도 ‘개쩐다’ ‘개짜증’ ‘개이득’으로 퉁치는 세상이지만 <흑백요리사>만큼은 ‘무엇이’ ‘왜’ ‘어떻게’가 정확하다. 어떤 재료를 어떻게 다뤄서 어떤 기법으로 얼마만큼 조리하고 맛은 어떻게 조합하며 무엇을 고려하고 무엇을 유의했는지, 이것이 왜 다르고 왜 아쉽고 왜 자랑스러운지 각자의 철학과 서사로 풍성하게 설명하고 있다.


셰프들의 ‘맛 표현’은 이렇게나 입체적이다. 셰프들의 맛 설계는 이렇게나 쫀쫀하다. 덩달아 시청자인 우리도 이들의 요리 앞에서 겹겹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그 덕분에 하루 세 번, 여행의 8할, 인생의 절반이라고도 할 수 있는 ‘먹는 즐거움’이 한층 더 다채로워진다. 하, 이건 정말 개이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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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이경진
  • 글 손기은
  • 사진 넷플릭스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