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가 필요 없는 세상은 없다
일본 영화의 3대 거장, 오즈 야스지로의 1959년 작품이 2026년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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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런 시절을 향한 그리움의 기억마저 사라질 지도 모르겠다. 슬레이트 위에 기와가 얹힌 이상한 모양의 지붕들이 좁은 틈을 두고 붙어 있다. 하지만 이 간격은 집과 집을 나누는 최소한의 구획일 뿐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실례합니다" 한 마디에 누구라도 무너뜨릴 수 있는 연약한 장벽이라서다. 그야말로 이웃 수저 개수까지 환한 송전탑 옆 언덕 아래 작은 마을에서 영화 <안녕하세요>는 막을 연다. 남의 집 밥상이며 TV 앞에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어도, 술 취해서 돌아갈 집을 착각해도 상관 없는 이곳에선 숫제 누가 누구의 가족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영화 <안녕하세요>
영화 <안녕하세요>
온 마을에 TV가 한 대 밖에 없는 빤한 살림살이는 옆집 세간 하나가 바뀌어도 삽시간에 소문이 퍼지는 원인이다. 한 집이 세탁기를 사니 어른들은 그걸 무슨 돈으로 샀을지부터 생각한다. 만날 때마다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라며 웃는 낯으로 인사했던 이웃인데도 말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달 분의 마을 부녀회비가 회장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세탁기를 산 집이 돈을 가로챈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반면에 돈을 걷은 집을 의심하는 쪽도 있다. 각자 결백을 호소하는 두 집의 부인들은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 하지만 이들이 대면하는 건 훨씬 나중의 일이다. 두 부인도 이웃도, 서로의 행동을 지켜보고 상상한 전말을 옮길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숨 쉬듯이 하는 살가운 인사는 겉치레에 불과한 쓸데없는 행동이 아닐까? <안녕하세요>는 TV를 사 달라고 떼를 쓰는 두 형제, 미노루와 이사무의 입을 빌려 의문을 던진다. 유일하게 TV를 보유한 집은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젊은 부부. 앞에선 여느 때처럼 인사하면서도 뒤에선 "집에서 서양 잠옷을 입고 있다"며 눈을 흘기는 이웃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마을 아이들은 스모 경기를 보러 부부의 집에 뻔질나게 드나들지만 부모들은 영 탐탁지 않은 상황이다. 미노루와 이사무는 "TV를 보러 가지 못하게 할 거면 TV를 사 달라"고 하지만 부모는 "애들이 쓸데없이 말만 많다"며 묵살한다. 그러자 미노루는 "어른들도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느냐"고 맞선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좋네요', '그렇구나' 따위의 말들이 쓸데없다며 동생과 함께 묵언 시위에 돌입한다.
영화 <안녕하세요>
이제 어른들의 변명을 들어볼 차례다. 부모들의 인사는 모종의 생존 전략이다. 에드워드 홀의 '고맥락 문화' 개념을 가져와 보자. 가벼운 인사의 목적에 '아이스 브레이킹'이 포함되지 않는 나라는 없다. 하지만 "밥 한 번 먹어야지"라는 말의 진짜 의도를 고민해야 하는 고맥락 문화권에서는 인사 뒤에 숨은 더 많은 의미를 읽어야 할 때가 있다.
<안녕하세요>에는 잡화를 팔려고 집집을 돌아다니는 방문 판매원이 나온다. 딱히 필요한 것이 없을 땐 귀찮은 존재다. 마을 조산부 할머니는 "잘 깎이는 연필"이라며 연필 깎는 시범을 보여주는 외판원 앞에서 "정말 잘 깎인다"고 물건을 칭찬하다가 갑자기 부엌으로 간다. 커다란 회칼을 가져다가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연필을 깎기 시작하는 할머니를 본 외판원은 얼굴을 구긴 채 짐을 챙긴다.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를 챘기 때문이다. 묵언 시위 중인 미노루가 모두에게 인사마저 생략하자 마을 전체가 그 맥락을 추측하려는 모습이 이를 방증한다.
영화 <안녕하세요>
자의든 타의든 사회적 맥락에 대한 지식이 쌓인 어른들은 반사적으로 인사를 내뱉는다. 눈치를 보지 않았을 때 경험한 불이익은 인사치레를 습관으로 만든다. <안녕하세요>에는 그 사소한 인사가 아니면 자동차를 팔 수 없는 어른이 있고, 자기 마음을 솔직히 고백할 수 없는 어른이 있다. 아직 맥락을 보는 능력이 필요치 않은 아이들에게 그런 어른들은 바보같고, 인사는 쓸데없는 말일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미노루와 이사무의 '인사 무용론'도, 어른들의 입장도 모두 옳게 들리지만 양쪽 다 틀린 곳도 있다. 아이들은 세상의 모든 것이 반드시 쓸모를 증명해야하는 건 아님을 깨닫지 못했고, 어른들은 인사를 방패 삼아 속내를 감춘다는 걸 반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국민의 백치화를 부른다며 TV 구매를 완강히 거부하는 부모와 TV를 보겠다며 가출까지 감행한 형제를 보면, <안녕하세요>는 조금 일찍 만들어졌을 뿐인 세대 갈등 이야기처럼 수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미노루와 이사무의 묵언 시위가 끝나는 대목에서, 영화는 모든 문제를 다정한 인사처럼 감싸 안는다. 진짜 "안녕하세요"가 필요 없는 세상은 없다는 걸 배워가는 아이들의 경쾌한 마지막 인사는 분명 웃음이 나는데도 눈물이 맺히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11일 재개봉.
Credit
- 에디터 라효진
- 사진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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