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에서 열리는 헬라 용에리위스 회고전

헬라 용에리위스의 30년 디자인 세계를 총망라한 첫 회고전이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에서 열린다. 본능과 직관으로 빚은 사물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내밀한 속삭임.

프로필 by 이경진 2026.04.07

헬라 용에리위스는 토마토 농장에서 자랐다. 농부의 딸이던 어린 헬라가 디자인과 제작을 처음 접한 것은 전통 수공예품 작업을 통해서다. 19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여자아이들은 대개 모여 뜨개질도 하고, 마크라메(Macrame′; 손가락 매듭 공예)를 만들고, 자신의 방도 꾸몄다. 용에리위스는 <디진 Dezeen>의 팟캐스트 채널 ‘페이스 투 페이스(Face to Face)’의 한 에피소드에서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창의적 에너지가 가득한 때였죠. 그때부터 손재주가 좋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소녀 헬라는 선생님이 섬유 관련 일을 하는 게 좋겠다며 건넨 조언을 거부했다. ‘여자아이다운 활동’에 참여하라는 말로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용에리위스의 베를린 스튜디오는 마크라메와 같은 그물들로 가득하다.

‘Polder safa, vitra’(2015)

‘Polder safa, vitra’(2015)

1990년대 초 에인트호번 디자인 아카데미 졸업 후 네덜란드 아방가르드 디자인 그룹 ‘드루그(Droog)’에 합류한 그녀는 얼마 되지 않아 독립해 바로 자신의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본인의 이름에 ‘랩’이라는 단어를 붙여 ‘용에리위스 랩(Jongerius Lab)’이라 불렀다. 실제로 용에리위스 랩은 디자인 사무소라기보다 연구소에 가깝다. 직물이나 세라믹, 가구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재료의 본질을 파헤친다. 완성되지 않은 오브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사용자가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PUSHED WASHTUB(1996).

PUSHED WASHTUB(1996).

헬라 용에리위스는 항상 자신의 작업에 수공예적 요소와 그에 내재된 불완전함을 불어넣는다. 완성된 것과 미완성된 것 그리고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경계를 허물면서. 2015년 밀란 디자인 위크에서 헬라 용에리위스가 이론가인 루이즈 쇼우벤베르크(Louise Schouwenberg)와 함께 발표한 선언문 ‘Beyond the New’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세상엔 이미 충분히 많은 물건이 있다. 단순히 새로운 걸 만드는 대신 기존의 것을 더 깊이 있게,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디자인 신의 무의미한 제품, 상업적인 과장 광고, 공허한 수사를 종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KASESE CHAIR(1999).

KASESE CHAIR(1999).

디자인 신에는 느리고 지루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이 많았지만, 용에리위스에게는 여기서 자신이 무언가를 바꿀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30년 동안 헬라 용에리위스는 디자인을 비판적이고 시적인 실천으로 정의하며, 우리가 일상생활을 구성하는 사물을 어떻게 만들고, 사용하고, 돌보는지에 대해 질문해 왔다. 산업 생산의 낭비성에 대해 꾸준히 비판적 목소리를 내왔고, 동시에 수많은 프로젝트를 통해 명성을 쌓았다. 놀라운 점은 그녀가 뉴욕 디자인 박물관, 퐁피두 센터, 뉴욕 현대미술관, 그로피우스 바우,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에서 개인전과 설치미술 전시를 연 디자이너이면서 주류 트렌드에 저항해 온 창작자라는 사실이다.

THE WORKER WITH MAHARAM LAYERS, VITRA(2006).

THE WORKER WITH MAHARAM LAYERS, VITRA(2006).

복잡함과 콜라주, 레이어드 미학을 발전시킨 용에리위스의 디자인에서 다양한 소재는 수공예와 불완전함의 표현력만큼이나 중요하다. 갈등과 과잉, 끊임없는 산만함이 만연한 이 시대에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에서 열리는 그녀의 회고전 <헬라 용에리위스: 속삭이는 사물들 Hella Jongerius: Whispering Things>이 매혹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UNITED NATIONS NORTH DELEGATES LOUNGE(2013).

UNITED NATIONS NORTH DELEGATES LOUNGE(2013).

전시는 1990년대에 경력을 시작한 이후 섬유, 도자기, 가구, 조명, 조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획기적 작업을 선보인 다학제 디자이너 헬라 용에리위스의 왕성한 활동을 총망라한다. 이미 충분한 물건이 있는 세상에서 디자인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사물은 어떻게 소비와 낭비가 아닌 감사와 보살핌을 구현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전시의 핵심이다. ‘드루그’에서 활동을 시작한 용에리위스가 2000년대 성공적인 제품 및 텍스타일 디자이너로 발돋움한 과정을 거쳐 최근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개인적 작품을 선보이는 여정을 좇는다. 스케치와 프로토타입, 필름 등 다양한 매체의 아카이브와 텍스타일 컴퍼니 마하람(Maharam), 항공사 KLM, 캠퍼, 이케아, 비트라 같은 파트너들과 함께 개발한 수많은 프로젝트를 비롯해 뉴욕 현대미술관 등의 기관을 위해 제작한 작품도 선보인다. 2024년부터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의 소장 작품이 된, 용에리위스의 방대한 아카이브가 기반이 됐다.

ANGRY ANIMALS, ERICA, SERIES 2(2024).

ANGRY ANIMALS, ERICA, SERIES 2(2024).

색채 연구 역시 그의 작업세계에서 중요한 축이다. ‘컬러드 베이스(Coloured Vases)’ 시리즈와 최근의 ‘브리딩 컬러(Breathing Colour)’ 연구에서는 색이 빛과 재료, 그리고 주변 환경과 어떻게 상응하며 숨 쉬는지 집요하게 탐구했다. 지난 몇 해 동안 용에리위스는 좀 더 본능적인 방식으로 흙을 다루기 시작했다. ‘화난 동물들(Angry Animals)’이라는 세라믹 시리즈는 지금의 용에리위스를 설명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반은 제품이고 반은 동물로 만들어진 형상은 모두 화가 나 있다. 올해 62세인 헬라 용에리위스는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분노하고 말한다. 그것이 나이가 들고, 시스템에서 일하지 않으며, 어느 정도 위치를 얻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OFFICE PETS, VITRA(2007).

OFFICE PETS, VITRA(2007).

헬라 용에리위스가 디자인한 사물에는 기계적 완벽함이 줄 수 없는 따스한 결여, 그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사물의 생명력이 있다. 용에리위스에게 디자인은 새로운 형태를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화 과정에서 잃어버린 사물의 개별성과 영혼을 되찾아주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헬라의 철학을 가장 직관적으로 증명하는 마스터피스는 단연 비트라를 위해 디자인한 소파 ‘Polder’(2005)다. 네덜란드의 간척지(Polder)를 하늘에서 내려다본 풍경에서 영감을 얻은 이 소파는 산업 디자인의 철칙인 대칭과 균일함을 보란 듯이 거부한다. 서로 다른 다섯 가지의 텍스트와 톤을 가진 직물의 레이어드, 기계적인 단추 대신 뼈나 경적 같은 천연 재료로 만든 커다란 단추를 불규칙하게 배치한 디테일로 표준화된 공산품에 개별성을 담아냈다.

MATRIX MODULE(2021).

MATRIX MODULE(2021).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헬라 용에리위스의 디자인 프로젝트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DIY 펭귄 소품’. 2012년에 발표됐다. 용에리위스의 제작 가이드에 따라 테이프와 골판지, 가위를 이용해 집에서 나만의 펭귄을 만들거나 변형을 만들 수 있는, 꽤 귀여운 프로젝트다. 폴더 소파가 산업 시스템 내부에서 개별성을 확보하려는 시도였다면 ‘DIY 펭귄 소품’ 프로젝트는 그런 실험을 일상으로 확장한 것이다.

베를린의 용에리위스 랩.

베를린의 용에리위스 랩.

골판지와 테이프라는 지극히 평범한 재료를 다루는 동안 사용자는 디자이너가 의도한 불완전한 아름다움을 자신의 손으로 체험하게 된다. 삐뚤삐뚤한 가위질이나 투박하게 붙인 테이프 자국은 산업적 결함이 아니라, 사물에 영혼이 깃드는 유일무이한 흔적이 된다. 똑같은 가이드를 보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형태로 완성하게 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주가 종이 펭귄에게 공산품에서는 가질 수 없는 고유한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 작고 귀여운 프로젝트는 디자인의 권위를 소유가 아닌 ‘창조의 즐거움’으로 돌려주려는, 차갑고 견고한 산업사회를 향한 헬라 용에리위스의 유쾌한 속삭임처럼 느껴진다.

‘Woven Movie’(2017).

‘Woven Movie’(2017).

어린 시절 만드는 일에 재능이 있음을 자각했지만 전통적인 ‘역할’만큼은 거부했던 한 소녀가 이제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만드는 일의 순수한 즐거움을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헬라 용에리위스: 속삭이는 사물들>전은 그의 30년 작업 여정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렸던 사물과의 교감을 복원하는 방법을 나직이 일러주며 묻는다. 내 곁의 모든 사물은 자신의 기능을 수행하다 버려질 도구일까? 아니면 취향과 가치관을 공유하며 함께 나이들 다정한 동반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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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사진가 한스-요르크 발터 / 로테 스테켈렌부르크 / 막달레나 렙카 / 용게리우스랩 / 비트라 / 프랭크 우데만 / 게릿 슈뢰르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