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콘서트 티켓부터 끊는 여행, ‘긱 트립’이 뜬다

공연이 여행지를 결정하는 기준점이 될 수 있을까? ‘긱 트립(Gig Trip)’이라는 새로운 세계!

프로필 by 이마루 2026.09.20

“도쿄까지 14시간의 비행을 마친 후, 내가 탄 택시는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의 화려한 네온사인을 뚫고 긴자에 있는 호텔로 향했다. 교차로 위 전광판에는 지구 반 바퀴를 가로지르는 이유가 되어 준 뮤지션 ‘배드 버니(Bad Bunny)’ 콘서트의 거대한 광고가 떠 있었다. 지난해 고향인 푸에르토리코 산 후안에서 총 31회, 석 달간 펼쳐진 배드 버니의 레지던시 공연을 다녀온 친구들은 단순한 공연 관람이 아닌 ‘영적 깨어남’에 가까운 후기를 전했다.


그래서 새로운 투어 ‘베니토(Benito)’의 첫 아시아 공연 초청장이 도착했을 때, 나는 주저 없이 도쿄행 비행기를 예매했다. 도쿄에서 48시간을 보내면서 심야 오마카세와 말차 칵테일, 시모키타자와의 감각적인 빈티지 숍을 오갔다. 돌아오는 길의 내 캐리어에는 돈키호테 마스크 팩, 이토야 문구류, 타워 레코드에서 산 일본 LP판이 가득 담겨 있었다.”


<엘르> 영국 7월호에 실린 부편집장 레나 드 카스파리스(Lena De Casparis)의 글을 읽은 K팝 팬이라면 누구나 짙은 기시감을 느꼈을 것이다. 한 번뿐인 공연을 경험하기 위해 아티스트의 행보를 따라 기꺼이 비행기에 오르는 건 K팝 팬이라면 오래전부터 해왔을 테니까. 나도 마찬가지다. 올해 1월에는 추위를 피할 곳을 찾다가 라이즈의 마닐라 공연을 예매한 김에 비행기로 1시간 반 거리인 세부의 따뜻한 바다에 잠시 몸을 맡겼고, 그보다 앞선 12월에는 K팝 시상식을 보기 위해 찾은 홍콩 샹그릴라 호텔 로비에서 그해 첫 크리스마스트리를 목격했다.


홍콩까지 간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시상식 무대에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연준의 솔로 퍼포먼스가 추가된 게 가장 컸다. LA, 도쿄,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처음 방문하는 도시든, 이전에 찾았던 곳이든, 공연을 보기 위해 왔을 때는 공연장 주변 풍경으로 모든 경험과 기억이 재편됐다.


K팝 종주국에 살다 보면 당연히 반대의 경험도 목격한다. 공항 철도를 탈 때마다 각종 스티커와 굿즈 인형, 부채로 장식된 캐리어를 끄는 팬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주말에는 올림픽공원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5호선과 9호선에서 마주친 소녀들의 가방에 매달린 갖가지 ‘최애’ 키링이 의미하는 것은? 오로지 공연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기꺼이 서울까지 날아온 이들에게 서울 풍경은 고척 스카이 돔이나 KSPO 돔 없이는 성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분명히 달라진 건 있다.


과거에는 열성적인 ‘슈퍼팬’의 전유물로 여겨진 이런 형태의 여행이 ‘긱 트립(Gig Trip; 음악 공연을 중심으로 한 여행)’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연례 광고 콘퍼런스 행사인 ‘애드버타이징 위크(Advertising Week)’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현재 여행자의 55%가 콘서트나 페스티벌을 중심으로 여행을 계획하며 심지어 젠지(Gen Z)세대에서 이 비율은 75%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영국의 음악 단체인 ‘UK 뮤직’ 또한 지난해 음악 관광이 영국 경제에 100억 파운드(약 19조 원) 이상 기여한 것으로 추정했다. K팝으로 인한 관광 활성화가 거의 국책 사업이 된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해외 팬을 대상으로 한 공연과 숙박을 연계한 여행 상품을 소속사가 판매하기 시작한 것도 수년 전의 일이니까.


그렇다면 긱 트립은 어떻게 전 세계적 여행 산업으로 진화했을까? 코로나19 이후로 직접 경험을 중시하는 풍조와 급증한 아티스트들의 월드 투어도 이유지만 본격화된 ‘티켓 전쟁’도 한몫한다. 거주 지역에서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예매하는 것이 나날이 어려워진 탓이다. 돌아보면 최근 내가 보이넥스트도어와 라이즈의 공연을 마닐라에서 본 것도 그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그 티켓을 구한다는 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일본 공연은 일본 팬클럽에 별도 가입해야 할 뿐 아니라 수령 방법이 까다롭다. 그런 상황에서 아시아의 다른 투어 지역에 비해 좀 더 티켓 여유가 있었던 게 필리핀 공연이었던 것.


이런 상황은 영국도 다르지 않다. “오아시스의 영국 공연 날짜를 놓쳤는데 리셀(재판매) 티켓 가격이 말도 안 되게 비쌌어요.” 레나는 지난여름 오아시스 재결합 투어를 보러 세 명의 친구와 함께 더블린으로 날아간 지인의 경험을 공유해 줬다. “비행기표와 에어비앤비를 예약해서 최고의 주말 여행을 했대요. 공연도 대단했지만, 학창 시절로 돌아가 친구들과 48시간을 보낸 게 진정한 사치이자 선물이었다고 하더군요.”라는 생생한 후기와 함께 말이다. 심지어 두아 리파 공연이 열리는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기내 안에서 최고의 친구를 만난 또 다른 이의 경험담도 소개해 줬다.


이처럼 ‘콘서트’를 계기로 기존 세계를 확장하거나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것, 그것이 ‘긱 트립’의 본질이자 매력이다. 음악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준다는 믿음은 21세기에도 여전히 가능하다. 물론 혼자여도 괜찮다. 처음 가보는 역에 내리자마자 나와 같은 행선지를 향하는 것이 분명한 사람들과 나란히 걷는 것, 나와 같은 음악을 사랑하는 수천, 수만 명의 낯선 사람들과 한자리에 모이는 느슨한 동질감과 유대감이 여행을 외롭지 않게 해주니까.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짧은 순간까지 친숙하게 만드는 서브컬처의 힘과 그 공간에서 ‘함께하는 순간’이 선사하는 기쁨도 놓치지 말자. 그것이 요즘 여행의 진짜 모습이니까.



Where to ‘Gig Trip’ Next


NEW YORK

해리 스타일스의 레지던시 공연 ‘Together, Together’가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8월 26일부터 10월 31일까지 총 30회 열린다. 19세기 아르데코 건물을 레너베이션한 ‘더 투웬티투 뉴욕’에 머물며 웨스트 빌리지에 있는 감각적인 레스토랑 ‘클레오(Cleo)’에서 식사할 것. 10월 11일 개막하는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리는 <로이 리히텐슈타인> 전시를 비롯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주요 아트 스폿의 일정을 체크하는 것도 잊지 말자.


STOCKHOLM

올해 9월에 시작해 북미 21개 도시를 순회하는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The Unraveled Tour’가 유럽의 첫 깃발을 스톡홀롬에서 꽂는다. 2027년 3월 19~20일에 열리는 공연을 즐기러 간다면 멋진 파노라마 루프톱 바를 가진 부티크 호텔 ‘빌라 달리아(Villa Dahlia)’를 예약할 것. 카페와 정원이 어우러진 ‘로젠달스 트레드고르드(Rosendals Trädgård)’의 런치 타임도 권한다.


HONG KONG

대대적인 월드 투어 ‘The BIG ASS Stadium World Tour’를 진행 중인 포스트 말론이 10월 2일 고양 종합운동장에서 내한 공연하기에 앞서 9월 16일 홍콩 카이탁 스타디움을 찾는다. 아시아 공연의 첫 장소인 카이탁 스타디움이 있는 카이탁 지구는 홍콩 최대의 도시 재생 사업으로 탄생한 만큼 카이탁몰, 에어사이드 등 대형 쇼핑몰과 식당이 넘쳐난다. 공연장 바로 옆 4성급 호텔 ‘도셋 카이탁(Dorsett Kai Tak)’에 숙박하는 것이 공연과 카이탁 지구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SYDNEY

K팝 아티스트 최초의 대규모 월드 투어가 2012년 빅뱅의 월드 투어라는 사실을 아는가. 데뷔 20주년을 맞은 빅뱅이 ‘XX: COSMOS’ 투어로 10월 31일 시드니 아코르 스타디움 무대에 선다. 지난 3월에 완공한 리조트 ‘인터컨티넨탈 시드니’가 자리한 쿠지(Coogee) 해안은 시드니 해안 산책로의 종점이자 본다이와는 다르게 고즈넉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곳. 올데이 다이닝인 ‘셔터스(Shutters)’에서 환상적인 뷰와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근처인 클로벨리 해변은 현지인들이 간단한 스노클링을 즐기는 스폿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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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프리랜서 에디터 이마루
  • 글 LENA DE CASPARIS
  • 콜라주 EMILY LORD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석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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