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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이스 채영이 써내려간 자기소개서 "가수로만 살아온 삶이요? 정말 좋아요"

트와이스 월드 투어를 마친 이후, 더 넓고 깊어진 채영의 세계에 관하여.

프로필 by 박찬 2026.07.29

트와이스의 여섯 번째 월드 투어 ‘This is for’를 마치고 서울 앙코르 공연을 앞둔 시점, 틈을 내 스튜디오로 들어선 채영의 얼굴에는 피로감이 가시지 않아 보였다. 새벽녘에 잠이 든다는 그녀. 불면을 누구 탓으로 돌릴 수 없듯, 턱밑까지 차오른 피로 역시 11년 차 아이돌에게는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무던한 공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헤어와 메이크업이 시작되고 촬영 시안을 마주한 순간, 채영의 눈빛은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의 그것으로 변해 갔다. 화보 페이지를 베스트 컷으로 채워 나가는 동안 피곤한 기색은 말끔히 휘발돼 있었다. 매 순간 새로운 모습을 갈망하는 얼굴이야말로 채영이라는 사람을 오롯이 대변하는 지표 같았다.


스터드 레더 재킷과 패턴 믹스 프릴 드레스, 웨지 힐 슈즈는 모두 Etro.

스터드 레더 재킷과 패턴 믹스 프릴 드레스, 웨지 힐 슈즈는 모두 Etro.

인터뷰 공간은 촬영 스튜디오의 2층 한켠이었다. “채영 씨. 머리 조심하세요.” 유독 천장이 낮아 조심하라는 말을 건네자 채영은 “제가 아담해서 괜찮아요”라며 생긋 웃는다. 피곤하지 않냐는 질문에는 “에이, 이 정도는 피곤한 것도 아니에요. 뮤직비디오 촬영할 때는 이것보다 훨씬 더 길어지는 걸요”라며 너스레를 떤다.


우리가 짐작하는 채영은 언제나 자유분방하고, 자신의 색깔이 강한 아티스트다. 그러나 카메라 뒤에서 만난 그는 타인에게 먼저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데 재미를 들인 스물일곱 살의 발랄한 청춘이다. 날 선 고독 대신 온화한 공존 안에서 변주와 즐거움을 찾는 태도. 화보 촬영현장을 오로지 카메라 앞에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닌, 스태프들과 호흡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의 리듬. 딱 그만큼의 단단한 여유가 채영에게서 흐르고 있었다.


새틴 카울 네크라인 드레스는 Acne Studios. 라운드 이어 커프는 Sirènes.

새틴 카울 네크라인 드레스는 Acne Studios. 라운드 이어 커프는 Sirènes.

“1년 동안 투어를 돌고 마지막 서울 공연을 앞두고 있잖아요. 그간 안 보여드린 곡들을 다시 무대에 올리려고 연습하다 보면 금세 마음이 둥실 떠올라요. 오랜만에 한국 ‘원스’를 잔뜩 볼 생각을 하니까 더 그렇고요.” 물론 콘서트 무대는 매번 몸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일이다. 하루에 네 시간씩 이어지는 연습실에서, 그 역시 시간이 남긴 솔직한 변화를 온몸으로 체감한다. “데뷔 초반과 비교하면 확실히 새로운 안무를 익히는 속도가 예전만 못한 것 같아요. 나이 탓인지 모르겠는데(웃음), 오래 서 있으면 허리가 은근 찌릿하기도 해요.”


팬 사이에서도 악명 높은 ‘I can’t stop me’ 전주가 흐르면 채영은 여전히 긴장한다. 후렴마다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동작에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기 때문이다. 힘든 안무가 있는 ‘More & more’에 대해서는 큭큭 웃으며 영리한 타협안을 고백한다. “그 곡이 진짜 힘들긴 해요. 요즘은 브리지 구간에 무대 앞으로 걸어 나가 팬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구성을 조금 바꿨어요.”


로고 패턴 셔츠와 스커트는 모두 Gucci. 포인트 스트랩 슈즈는 Gianvito Rossi.

로고 패턴 셔츠와 스커트는 모두 Gucci. 포인트 스트랩 슈즈는 Gianvito Rossi.

몸의 피로도를 상쇄하고도 남을 이번 월드 투어는 창작자 채영에게 거대한 자극제가 됐다. 특히 라이브 밴드 세션과 함께하는 음원과는 전혀 다른 ‘공연만의 묘미’를 깨달은 것이다. “콘서트 현장에 와야 들을 수 있는, 편곡된 곡들이 힘을 발휘할 때가 있어요. 아티스트가 무대 위에서 팬들과 어떻게 눈을 맞추고 소통해야 공연의 공기가 뜨거워지는지 지난 1년 동안 꽤 밀도 있게 배운 것 같아요. 정연 언니, 지효 언니와 함께했던 유닛 무대 ‘Takedown’을 할 때, 미국과 유럽 팬들이 보여줬던 함성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해요(웃음).”


드레이프 드레스와 프린지 글러브는 모두 Sportmax.

드레이프 드레스와 프린지 글러브는 모두 Sportmax.

밴드 사운드의 생생한 에너지를 사랑하게 된 채영의 취향은 지난해 정성을 쏟아 부은 첫 솔로 정규 앨범 <Lil fantasy vol. 1>과도 결을 같이 한다. 대표 예시가 일본계 캐너디언 형제 밴드 ‘글리코(Glico)’다. 이들은 타이틀곡 ‘Shoot(Firecracker)’를 포함해 대부분의 곡 제작에 참여했다.


세션 작업에 막대한 공을 들인 그의 진심을 가장 먼저 알아챈 건 결국 리스너들이었다. “속으로만 ‘시간도 많이 들이고 영혼을 갈아넣은 앨범’이라고 생각했지, (다른 사람이) 이렇게까지 알아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어요. 팬들이 그런 노력을 온전히 느껴줬어요. 멤버들도 ‘얼마나 고생했는지 보인다’고 말해줬을 때, 나보다 이 앨범을 더 사랑해 주는 것 같아 뭉클하고 고마웠어요.”


이렇듯 채영은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내가 지금 좋아하는 것’에 무던하게 집중해 왔다. 오랜 시간 묵묵히 제 안의 취향을 가꿔온 창작자의 뚝심은 솔로 정규 앨범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K팝 아이돌이라는 편견에 갇히지 않고 꽃에 물을 주듯 내면을 키워왔다’는 한 음악 평론은 그가 묵묵히 걸어온 길에 대한 다정한 지지였을 것이다.


연습생 시절 ‘언젠가 내가 만든 음악을 내 이름의 앨범으로 세상에 내놓고 싶다’던 꿈은 마음 맞는 뮤지션 친구들과 곡을 차곡차곡 모으면서 현실이 됐다. 싱글과 EP가 범람하는 시대에 아홉 곡을 꽉 채운 정규 앨범을 고집한 건 타협하고 싶지 않았던 자존심 때문이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정규 앨범을 내겠다는 선택은 안 바꿨을 것 같아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적당히 곡 수만 맞춘 EP를 내는 건 싫었거든요.”


첫 정규 앨범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에 대해 채영은 한참 고민하다 다정한 단어를 꺼냈다. “이 앨범은 내 취향과 세상을 보여주는 첫 번째 ‘자기소개서’예요. 사실 저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음악을 좋아하고, 제 내면의 색깔은 이렇다고 사적 고백을 건네는 것과 같아요.”


스터드 레더 재킷과 패턴 믹스 프릴 드레스, 웨지 힐 슈즈는 모두 Etro.

스터드 레더 재킷과 패턴 믹스 프릴 드레스, 웨지 힐 슈즈는 모두 Etro.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춤을 배우고, 4년 뒤 치열한 서바이벌 프로그램 <Sixteen>을 거쳐 어린 나이에 세상의 중심에 선 채영. 당시 그를 움직인 건 “진짜 가수가 되고 싶었고, 가족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 하나였다. “가수로만 살아온 삶이요? 정말 좋아요. 내가 사랑하는 음악과 춤추고, 그 모습을 조건 없이 사랑해 주는 팬이 존재한다는 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축복이잖아요. 가끔 가수가 안 됐다면 뭘 했을까 상상해 봐요. 어쩌면 해외에 거주 중이었을지도 몰라요(웃음).”


가수가 아닌 다른 삶을 잠시 상상하던 그는 이내 무대 뒤편의 일상 풍경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최근의 채영은 ‘디 인터넷’ 멤버인 스티브 레이시의 신곡과 시티팝 가수인 오오누키 타에코의 1977년 앨범 <Sunshower>를 자주 듣고, 비틀스의 명반을 공부하는 마음으로 다시 듣기 시작했다.


이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도 그는 문득문득 깊은 사유의 바다로 침잠한다. 얼마 전 오랜 시간 함께했던 반려견을 하늘나라로 보낸 일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삶을 밀도 있게 사랑하도록 만든 계기가 됐다. “생과 사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허무함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결국 좋은 자극으로 치환하려 해요. 저마다의 생이 정해져 있다면 살아 있는 동안 열심히 이것저것 즐겁게 해봐야겠다고 말이죠.”


페더 트림 재킷과 레오퍼드 프린트 셔츠, 레이스 쇼츠, 플라워 패턴의 스타킹은 모두 Valentino. 새틴 스트랩 슈즈는 Valentino Garavani.

페더 트림 재킷과 레오퍼드 프린트 셔츠, 레이스 쇼츠, 플라워 패턴의 스타킹은 모두 Valentino. 새틴 스트랩 슈즈는 Valentino Garavani.

앨범 제목 뒤에 붙은 ‘1’을 보며, 리스너들은 자연스럽게 다음 페이지를 상상한다. 채영 역시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며,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는 창작자로 남길 바란다. “시간이 흐르면 내가 입고 싶은 옷이 달라지는 것처럼 내가 하고 싶은 생각과 곡도 달라질 거예요. 그때마다 움츠리거나 물러서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맞다고 믿는 확신을, 하고 싶은 표현을 과감하게 밀고 나가는 아티스트로 쭉 살아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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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패션 에디터 박찬
  • 사진가 방규형
  • 패션 스타일리스트 최예지
  • 헤어 스타일리스트 이혜영
  •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수연
  • 아트 디자이너 강연수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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