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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연애 프로그램’(이하 연프) 시대다. 넷플릭스 <연애실험실>은 연애를 관찰하는 것에서 나아가 ‘실험’을 내세운다. 남녀를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두고, 어떤 감정 변화를 겪는지 지켜보면서 말이다
이진주 ‘실험’이라는 이름 아래 남녀의 다양한 감정 변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연프 실험실’인 셈이다(웃음). 지금 국내 연프는 굉장히 다변화됐고,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장르다. <환승연애> <연애남매>를 만들며 여러 상황에 놓인 참가자들의 감정선을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했는데, 그 아이디어를 한데 묶어보고 싶었다.
강유민 대부분의 연프가 2~3주씩 길게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을 담는다면, 우리는 훨씬 짧은 시간에 특정 상황을 주고,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한다.
공동연출자인 두 사람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된 건가
이진주 처음 만난 건 <윤식당> 시즌1. 그때 유민이는 신입사원이었다. 인도네시아 길리에서 함께 먹고, 자고, 동고동락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이후 내가 회사를 옮기고 나서도 함께하게 됐다. 성향도 비슷한데, 유민이는 젊고 패기가 있다. 나는 좀 더 사회화된 유민이에 가깝다(웃음). 우리는 서로 맞붙으면서 시너지가 나는 편. 둘 다 일단 지르고 보는데 내가 “침대에서 소개팅하면 어때?”라고 하면, 유민이는 곧바로 “재밌겠는데?” 한다.
강유민 처음으로 PD 일이 재밌겠다고 느끼게 해준 선배다. 함께 일했던 기억이 좋아서 다른 회사로 옮길 때도 선배와 다시 함께하지 못할 것 같아서 아쉬웠다. 그때 선배가 “마음이 남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같이 일하게 되더라. 우리도 그럴지 몰라”라고 했는데 지금 함께 <연애실험실>을 연출하고 있다는 게 내게는 정말 의미가 크다.
‘침대에서 남녀가 만난다면?’ ‘이상형과 24시간 고립된다면?’ ‘취한 채로 마주한다면?’ 등 매회 새로운 실험이 이어진다. 특히 각자 일상을 마친 뒤 오직 침대에서 서로를 탐색한다는 참신한 설정이 탄생한 계기는
이진주 개인적으로 누워 있는 상태를 좋아한다(웃음). 편집하다가도, 회의하다가도 제작진은 잘 드러눕는다. 왜 찜질방에 누워 이야기하다 보면 친구와 훨씬 진솔한 대화를 하게 되지 않나. 그러다 문득 ‘누워서 소개팅하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자세가 달라지면 태도와 분위기도 달라질 테니까.
3박 4일간의 침대 실험 참가자인 찬양과 명주는 자극적인 상황을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훨씬 내밀하고 순수한 대화를 나누며 가까워졌다. 본연의 모습으로 마주서면서 말이다
이진주 남녀가 침대에 놓이면 공간이 주는 긴장감은 분명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 자체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이 누워서 서로를 바라보는 상황은 분명 엄청난 설렘을 선사한다. 더 다가가고 싶어도 카메라가 있으니 쉽지 않고, 그런 거리감마저 감정으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강유민 사실 낯선 설정 탓에 촬영 전날 악몽을 꿀 정도로 걱정했다. 동의 하에 촬영했지만 정말 ‘아닌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실험 첫날, 찬양 씨가 명주 씨를 기다리다 먼저 잠든 모습을 보고, 이미 그 상황을 편하게 받아들인 것 같아 안심했다. 상황의 자극성에 집중할 것 같은 사람보다, 가치 있는 사람을 알아가는 데 초점을 둔 출연자를 섭외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말 그대로 ‘진심’인 분들 말이다.
두 사람은 어떻게 매칭했나
이진주 컨셉트가 강한 만큼 됨됨이를 중요하게 봤다. 자칫 불편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 제작진 모두 믿을 수 있는, 검증된 사람이어야 했다. 찬양 씨는 작가님이 다른 프로그램으로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던 분이라 성품을 잘 알고 있었고, 명주 씨도 <환승연애2> 때부터 섭외를 시도했던 터라 몇 년에 걸쳐 근황을 지켜보고, 여러 차례 인터뷰하며 자신의 일과 삶에 진심인 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면 안심이다 싶었다.
강유민 무장 해제된 상태에서도 있는 그대로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분들이 맞았다.
이진주 출연자들은 침대로 ‘입장’하기 전 샤워하고, 세수를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런 과정 자체가 사회적 모습을 하나씩 내려놓고, 자신으로 돌아가는 과정처럼 보였다. 침대라는 공간은 본성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환경인 것 같다.
총 네 번의 실험 중 두 번째는 ‘고립’이다. 서로를 이상형으로 지목한 남녀 네 명이 산장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진주 처음에는 ‘남녀를 고립시켜 놓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요즘 사람들이 MBTI처럼 이상형까지 세세하게 분류한다는 걸 알았다. 예전처럼 ‘긴 머리와 하얀 피부’가 아니라 ‘테토’ ‘에겐’ ‘두부상’ ‘아랍상’ ‘고양이상’ ‘강아지상’ 등 훨씬 구체적으로 명명하더라. 심지어 두부상 안에서도 ‘구운 두부’ ‘두부 모서리’처럼 세분화된다(웃음). 출연자를 100명 넘게 인터뷰하다 보니 제작진도 자연스럽게 그 카테고리를 공유하게 됐다. “우리 출연자 중에 두부 모서리상이 누구였지?” 하면서. 그 과정에서 실험도 훨씬 정교해졌다.
강유민 참가자인 지영 씨 말고도 ‘두부 모서리’ 상을 말한 분들이 꽤 많았다. 그 ‘두부 모서리’에 관한 정의도 각자 달라서 정확하게 어떤 인상인지 “사진 좀 보여달라”고 했다(웃음).
이 실험을 설계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을 꼽는다면
이진주 실험인 만큼 반드시 질문이 있어야 했다. 가설이 있고, 그에 대한 결과도 물론. ‘고립 연애’도 처음에는 여러 군데 로케이션을 다니며 “사람들을 산장이나 오두막에 가둬 놓으면 사랑에 빠질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그러다 이상형을 구체적으로 분류하고 인터뷰하는 과정으로 이어지며 실험이 더 풍성해졌다.
강유민 동시에 끝내 풀리지 않는 질문도 있었다. 이 상황이 사람들을 사랑에 빠지게 만든 건지, 원래 사랑에 빠질 사람들이었는지 알 수 없다는 거다. 평행우주가 없는 이상 같은 사람을 다른 조건에서 다시 실험해 볼 수는 없으니까(웃음). 다만 우리 가설이 맞아떨어지는 순간도 있었고, 남녀 관계에 대해 당연하다고 믿었던 전제가 무너지는 순간도 많았다.
이미 연프 리액션으로 유명한 찰스엔터와 주헌이라는 조합도 예상 밖이었다
강유민 찰스엔터의 연프 리액션을 정말 많이 봤다. 마치 친구와 소파에 기대 앉아 노트북으로 같이 보는 느낌을 <연애실험실>에 가져오고 싶었달까.
이진주 찰스엔터는 메타적인 시선으로 프로그램을 본다. 출연자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제작진도 ‘까고’ ‘셀프디스’도 한다. 연프를 많이 본 사람들만 할 수 있는 해석도 있다. 출연자의 심리를 읽고,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고, 직접 리플레이까지 해주니 보는 재미가 훨씬 커진다. 출연자의 네일 모양으로 고양이 상, 강아지 상을 구분하는데 우리도 그런 디테일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강유민 “누가 연프를 산장 노란 장판에서 찍어요?”와 같은 의문도 제기해 주며, 새로운 지점을 해설해 주기까지(웃음).
이진주 주헌 씨는 ENFJ 그 자체라 찰스엔터와의 케미스트리가 극대화된다. 래퍼이기에 솔직한 자기 생각을 얘기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데 두 분이 만나면 리액션이 레이어처럼 쌓인다. 그들의 시선으로 실험의 해상도가 확 높아지는 기분이다.
‘현실 커플’도 탄생했다. 제작진으로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을 것 같은데
이진주 직업적 효능감이 굉장했다. 얼마 전 찬양 씨와 명주 씨 커플의 리액션 영상도 촬영했는데, 찬양 씨가 앉자마자 “PD님, 저희 방송 안 나가도 돼요. 저는 다 이뤘고 중요한 걸 얻었거든요”라고 했다. 방송을 이틀 앞둔 시점이었는데 방송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사실 우리 일을 농담처럼 ‘유사결혼정보회사’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책임감이 막중하다.
강유민 화제성이나 유명해지고 싶은 분만 섭외한다면 이렇게까지 부담을 느끼지 않았을 거다.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나온 분들이라는 걸 아니까, 그만큼 부담을 갖게 된다.
연프를 오래 제작하다 보면 요즘 사람들이 사랑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게 느껴지나? 특히 Z세대 연애에서 읽히는 특징이 있다면
강유민 요즘은 무엇이든 이름 붙이는 걸 좋아한다. 그만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명확히 알고 싶어 한다. 결국 ‘정답’을 찾고 싶은 거다. 동시에 그 답이 불분명하면 쉽게 나아가지 않으려는 경향도 보인다.
이진주 확실한 것에 베팅하려는 세대인 것 같다. 확신이 없으면 시간과 감정을 쓰는 것 자체를 낭비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보인다. 3년 전 출연자들을 인터뷰할 때만 해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좋다”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다”가 반반 정도였다. 상대가 먼저 호감을 보이면 마음이 움직인다는 답도 많았고. 지금은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시작하지 않는다” “누가 나를 좋아해도 내 마음이 없으면 바뀌지 않는다”고 말한다.
플러팅 방식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나
강유민 플러팅에서는 의외로 클래식이 영원하다(웃음). 2000년대생 출연자들도 서로 손금을 봐주고, 손 크기를 재 보고, 쌈을 싸서 먹여준다.
이진주 하나 더 덧붙이면 ‘이게 나야’라는 식의 표현을 정말 많이 해서 놀라기도 했다. 결국 자신을 있는 그대로 어필하는 방식인 것 같다.
<환승연애>에서는 ‘헤어진 사람도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를, <연애남매>에서는 가족을 통해 연애관계를 들여다봤다. 낯선 사람을 낯선 상황에 놓아본 지금, 의외로 가장 빨리 사랑을 만드는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외모, 대화, 타이밍 아니면 전혀 다른 요소인가
이진주 외모나 대화는 기본값이고, 결국 한 사람에게 빠지게 만드는 건 스스로 하는 ‘의미 부여’다. 그 의미가 아닌 것들은 다 탈락된다. 그 감정에 대한 아름다운 정당성과 근거를 만들면서 말이다.
강유민 출연자끼리 ‘우리 진짜 비슷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근데 제작진이 보기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거든(웃음). 그럼에도 서로 ‘닮았다’고 느끼는 순간이 관계를 빠르게 진전시키는 결정적 순간인 것 같다.
연프가 지금 세상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강유민 소설을 읽는 이유도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보며 그 경험치를 쌓을 수 있기 때문인데, 연프도 마찬가지다. 특히 연애 자체가 줄어들고, 효율적이지 않은 선택을 쉽게 하지 않는 시대이자 세대에게 그럼에도 누군가는 굳이 사랑하고, 마음을 움직이고, 관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것 자체가 간접 경험으로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진주 여행이나 요리 리얼리티는 여행지나 음식처럼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소재가 있다. 그런데 연애 예능 프로그램은 오롯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 연프가 리얼리티의 최고 정수이지 않을까?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회 실험이다. 연프는 그 흥미를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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