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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는 오랫동안 계절보다 역사로 기억되는 도시였다. 합스부르크 왕가, 벨베데레 궁전, 클림트와 <키스>, 에곤 실레,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그러나 수심 3m의 도나우강으로 참지 못하고 ‘풍덩’ 뛰어든 순간, 이곳은 더 이상 예술의 도시가 아니라 ‘잘 사는 도시’로 내게 자리매김했다. 시민들이 도시를 활용하는 방식에서 말이다.
름이면 시민들이 가장 먼저 향하는 도나우인젤의 갠제호이펠 비치 풀.
도착하자마자 300년 넘은 옛 우체국 건물을 복원한 빌데 아파트호텔 비엔나 플라이슈마르크트(Wilde Aparthotels Vienna Fleischmarkt)에 짐을 풀었다. 5분 정도 걸으면 다뉴브 운하가 내려다보이는 카페 겸 레스토랑 모토 암 플루스(Motto am Fluss)가 나오는데, 그 테라스에 앉은 순간부터 비엔나는 아주 조금씩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퇴근 시간은 대부분 오후 4시, 여름에는 오후 8시가 돼도 해가 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일과를 마치고 도시의 긴 낮을 각자의 방식으로 만끽한다. 여기서 문화는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일상이 된다. 이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제움스콰르티어(MuseumsQuartier)부터 가보는 것. 황실 마구간이던 공간은 50여 개 문화 기관이 모인 허브가 됐다.
양 옆으로 자리 잡은 21세기 걸작들의 보고인 무목(Mumok)과 세계 최고의 에곤 실레 컬렉션을 자랑하는 레오폴드(Leopold) 사이로 시선을 사로잡는 건 다름 아닌 중정이다. 사람들은 매년 새로운 색상으로 옷을 갈아입는 ‘엔지스(Enzis)’ 벤치에 아무렇게나 누워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친구를 기다린다. 올해는 개관 25주년을 맞아 전통 럼 케이크에서 영감받은 핑크와 레모네이드를 닮은 옐로를 입었다.
무제움스콰르티어와 엔지스 의자.
옛 우체국 건물을 레너베이션한 감각적인 호텔. 빌데 아파트호텔 빈 플라이슈마르크트의 중정.
낮은 이제 시작이다. 시내에서 불과 몇 분 거리에 있는 도나우인젤(Donauinsel)의 피어 22(Pier 22)는 비엔나의 가장 활기찬 풍경과 마주할 수 있는 곳. 1969년,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뉴 다뉴브 강과 도나우인젤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곳이 매년 2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그대로 강에 뛰어들고, 맥주를 들고 선베드에 눕기도, 그리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20유로 남짓이면 2인승부터 6인승까지 다양한 보트를 빌릴 수 있는데 모두 ‘따릉이’를 타듯 보트에 올라 더 깊은 수로로 향한다. 출출함이 몰려올 때쯤에는 강변의 추어 알텐 카이저뮬레(Zur Alten Kaisermu¨hle)에 배를 대고 제철 해산물과 채소를 활용한 요리를 즐긴다.
비엔나는 저녁이 되면 또 다른 얼굴을 내보인다. <비포 선라이즈> 배경이 된 유원지 프라터(Prater)에서는 비엔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여름마다 야외 피크닉 콘서트를 연다. 올해는 한국계 미국인 지휘자 홀리 현 최가 지휘봉을 잡았는데 드레스 코드도, 객석도 없다. 잔디 위에 돗자리를 펴고 맥주 잔을 손에 든 사람들. 아이들은 뛰어놀고, 연인은 서로에게 기대 앉고, 반려견도 함께 공연을 본다. 세계 최고 수준의 클래식 음악을 가장 권위 없는 방식으로 만나는 풍경. 낭만적인 왈츠의 도시와 빈티지 놀이공원이 같은 밤을 공유한다는 사실도 이상할 만큼 자연스럽다.
곳곳에 숨은 맛집을 여유롭게 호핑할 수 있는 카르멜리터 지구.
비엔나에서는 미식도 거창하지 않다. 여유로운 마켓 카르멜리터마르크트(Karmelitermarkt)에서는 지역 색이 강한 음식과 스프리츠 와인으로 소소한 미식 투어를, 올해 미쉐린 빕 구르망에 선정된 탄테 리슬(Tante Liesl)은 이미 현지인의 단골집이다. 400년 역사를 이어온 춤 슈바르첸 카멜(Zum Schwarzen Kameel)의 시그너처인 오픈 샌드위치 ‘벨레그테 브로테’는 놀랄 만큼 다채롭다. 마인클랑 호플라덴(Meinklang Hofladen)에서는 농장에서 직송해 온 재료와 내추럴 와인을 통해 ‘팜 투 테이블’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마인클랑 호플라덴의 식재료들은 농장에서 직배송된다. 내추럴 와인과의 조합이 일품.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자, 포도밭이 시작된다. 도시 경계 안에서 와인을 수확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곳. 트램을 타고 내려 포도밭 사이를 걷다 보면 비닝거 암 누스베르크(Wieninger am Nussberg) 와이너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포도밭 한가운데에 있는 바에 앉아 그곳에서 자란 포도로 빚은 와인으로 잔을 채운다.
이 모든 즐거움은 하나의 풍경이 아니라 여러 장면이 이어져 완성된다. 과거를 아름답게 보존한 동시에 현재를 잘 누리는 도시. 비엔나에 갓 도착한 당신도 오래지 않아 옷 젖을 걱정도 없이 푸른 도나우강으로 뛰어들게 될 것이다. 이제야 요한 슈트라우스가 왈츠 곡의 이름을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라고 지은 이유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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