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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옥 봉황 가락지. 모든 유물과 작품은 벽봉한국장신구박물관 소장품.
섬섬옥수, 옥구슬, 옥석…. 일상에서 의식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좋은 것을 표현할 때 옥(玉)을 붙이곤 한다.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옥은 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지칭하는 상징이자 기준이다. 곱고 흰 백옥, 은은하고 신비로운 비취색은 물론, 물리적 마찰을 견뎌내며 완성되는 인내와 끈기 등 옥이 가진 특징은 한국 정서와 닮아 있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여타 보석과는 달리 동양의 옥은 주변의 빛을 흡수해 가장 안온한 온도로 되돌려준다. 빛을 안으로 머금어 깊이를 보여주는 이 고아한 돌은 요란한 과시보다 내면의 기품을 중시해 온 민족의 미학을 대변한다.
영친왕비 백옥수자문떨잠 · 백옥나비떨잠. 떨잠은 여성이 예복을 입을 때 머리에 꽂는 전통 장식으로, 움직일 때마다 옥판 위의 장식이 떨리듯 흔들린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옥판 위에는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다양한 상징물이 배치된다. 그 위에 청파리와 홍파리, 진주로 꾸민 봉황이나 새 모양의 장식이 부착된 용수철을 올려 생동감을 더하는 방식. 두 점이 한 쌍을 이룬다. *홍· 청파리 : 붉은색과 푸른색을 내는 보석이나 유리구슬을 뜻하는 옛 한자어.
옥의 한자 형태를 살펴보면 왕자에 점이 찍혀 있는 형상. 귀한 옥은 왕실의 보석이었다. 조선의 왕이 옥을 지닌다는 것은 스스로 군자(君子)임을 증명하고, 흐트러짐 없는 도덕적 긴장감을 유지하겠다는 뜻과 같았다. 대표적 예가 옥대(玉帶)다. 왕실의 칼인 어도와 허리띠 장식인 토환(띳돈)도 마찬가지. 여인들의 품에서 옥은 섬세한 감정의 매개체였다. 옥가락지는 치장을 넘어 ‘둘이 만나 하나가 된다’는 의미로, 영원히 변치 않을 사랑의 맹세이자 가문의 품위를 증명하는 징표이기도 했다.
호박 쌍가락지.
영친왕비 옥비녀·뒤꽂이. 비녀와 뒤꽂이는 조선시대 여인의 대표 장신구였지만, 계급과 계절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왕실 비녀는 다양한 소재와 장식이 사용됐으나 그중 백옥과 비취(경옥), 산호 비녀는 주로 하절기에 착용했다. 초롱 모양의 머리에 대나무나 매화를 투각해 자연미를 강조했다. (위부터) 영친왕비 산호매화잠, 비취초롱잠, 백옥매화잠, 산호초롱잠, 비취박쥐뒤꽂이.
은은한 광채를 뿜어내던 옥비녀 역시 단단하게 감아 올린 검은 타래머리 사이에 꽂혀 여인의 고고한 절개와 범접할 수 없는 우아함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이었다. 왕실 혼례인 가례에서는 필수 머리 장식이기도 했다. 치맛자락에 떨어지던 삼작노리개의 옥 장식은 크기와 화려함에 따라 지위를 나타내기도 하고 걸을 때마다 맑은 소리를 내 보이지 않는 품격을 드러내기도 했다. 당의를 장식하던 노리개와 머리 장식부터 가문 높은 규수의 손끝에 머물던 옥가락지까지 조선 여인들에게 옥은 위엄은 물론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장신구였다.
청백옥 쌍봉문 모자합. 모자합은 향과 화장품, 귀금속, 약재 등을 용도별로 나눠 보관하기 위해 사용했던 고급 공예품으로 큰 합 안에 작은 합을 품고 있는 형태다. 벽봉 김영희의 작품으로, 맑고 은은한 빛의 청백옥 뚜껑에 두 마리의 봉황을 비롯해 전통 무늬를 정교하게 투각했다. 대비를 이루는 안쪽의 작은 합은 연옥에 얕은 음각 무늬를 섬세하게 새겨 넣었다.
영친왕비 백옥 쌍용문 단작 노리개. 백옥판 위에 수(壽) 자를 새기고 양쪽으로 두 마리의 용을 투조한 단작 노리개. 앞면은 진주와 홍파리, 뒷면은 진주와 청파리로 입체감을 더했고, 상단과 하단에 옥판을 물린 금속 부분은 은으로 마무리하고 비취모로 장식했다. 매듭은 홍색 끈으로 위쪽엔 생쪽매듭, 아래쪽엔 삼정자, 날개가지방석, 삼정자매듭으로 마무리했다.
선조들이 귀하게 여긴 옥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옥과는 차이가 있다. 지금은 경옥이나 연옥 같은 광물학적 분류법으로 옥을 한정 짓지만, 과거에 옥의 범위는 훨씬 넓었다. 당시의 옥은 대지에서 나는 아름답고 귀한 옥석류를 통칭하는 개념이었다. 백옥과 비취는 물론이고 수정, 마노, 호박처럼 땅이 오랜 시간 동안 빚어낸 단단하고 영롱한 돌은 전부 옥이라는 이름 아래 묶였다. 그리고 상아와 진주, 산호, 거북의 등껍질로 만든 대모처럼 살아 있는 것들이 남긴 유기물 보석인 ‘보패(寶貝)’ 또한 옥이라 불렀다. 선조들이 사랑한 옥은 대지와 생명이 빚어낸 고귀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영친왕비 외봉 족두리. 감색단을 아래는 둥글고 위는 각이 지게 여섯 쪽을 붙이고 솜을 넣어 마무리한 족두리. 전면엔 복(福), 양측 면에는 쌍으로 된 기쁠 희(囍) 자를 옥으로 투조해 장식했다. 상단의 백옥 연화 위에도 진주와 산호를 얹어 단아하지만 기품이 있다. 은으로 만든 꽂이에는 나비 모양의 세공을 더했다.
시대가 흐르며 보석을 분류하는 기준은 달라졌지만, 그 속에 담긴 미학만큼은 변함없다. 호화로운 보석이 저마다 광채를 자랑하는 오늘날에도 옥이 지닌 독보적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자연스럽고 오묘한 색감, 안으로 머금는 절제된 광채와 특유의 자태는 볼수록 깊은 매력을 풍긴다. 눈부신 광채 없이도 시선을 붙잡는 이 단단한 보석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가진 고결한 절개와 닮았다. 한국 장신구 미학의 중심에는 고유한 기품을 보여주는 이 고아한 돌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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